침엽수 vs 활엽수에 혼합림 개선…'생육환경 한계' 지적
산림과 민가 경계에 안전공간 조성…온전한 산림 되찾는 치유시간 50년 이상 걸릴 듯
(속초=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강원 동해안을 휩쓸고 간 산불로 산림 2천832ha가 초토화됐다.
고성과 속초(1천227ha), 강릉과 동해(1천260ha), 인제(345ha) 등 5개 시·군 피해규모는 여의도(290㏊)의 9.8배, 축구장(0.714㏊) 3천966개와 맞먹는다.
이번 산불은 초속 20∼30m에 달하는 강풍을 등에 업고 민가까지 빠르게 확산한 데다 야간에 발생해 피해를 키웠다.
강원도는 산림복구에 약 701억원을 투입해 수종 선택, 2차 피해 예방사업 등으로 항구 복구에 나선다.
하지만, 본연의 '건강한 숲'을 찾기까지 반세기가 넘는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 복구 수종 '침엽수' vs '활엽수'…생육환경·산주 이해 충돌
강원도는 산림이 80%가 넘지만, 동해안 숲은 불이 나면 치명상을 주는 '화약고'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봄철 서고동저(西高東低)에 의한 건조한 기후와 독특한 국지적 강풍 때문이다.
한반도 남쪽 고기압과 북쪽 저기압 사이 강한 서풍이 밀려와 태백산맥을 넘어 건조한 바람이 분다.
또 양양과 간성, 강릉 사이에 불어닥치는 '양간지풍' 또는 '양강지풍'이라는 독특한 지형특성의 결과다.
특히 동해안을 상징하는 대표적 침엽수인 소나무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불이 잘 붙는 송진이 연료 역할을 하는 데다 솔방울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탓에 큰불로 커지는 주범이 된다.
실제로 소나무는 척박한 겨울에도 잎이 풍성해 송진에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1천도 이상 열기를 내뿜는다.
이 때문에 대형산불이 발생할 때마다 불에 잘 타지 않는 참나무나 황철나무 등 활엽수를 심는 대책이 대안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동해안 일대는 대부분 마사토 지역이어서 활엽수가 생육하기 어려운 산지가 많다.
침엽수와 활엽수를 섞은 혼합림(혼효림)으로 개선하는 방안도 어려움이 따른다.
이론상으로는 맞지만, 지질이나 기후 특성상 한계가 있다.
우점종이 소나무여서 다른 나무를 심어도 결국 소나무 숲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지난 2000년 산불이 발생한 강릉시 사천면의 경우 산불 예방 차원에서 참나무를 섞어 심었지만,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또 사유림은 일방적인 복구 조림 지정이 안 되는 탓에 산주 동의가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소나무는 송이와 같은 특용작물 등 산림 소득을 올리는데 유리한 조건을 제공한다.
이번 산림 피해에 사유림은 2천504㏊(89%)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강원도 관계자는 "사유림의 경우 산주의 산림소득과 연결돼 수종 변경이 쉽지 않다"며 "산불 피해지에 대해 적정한 수종을 선정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라고 말했다.
산림 전문가들은 마을과 인접한 소나무의 경우 숲 가꾸기로 불에 잘 타는 연료(인화성 물질)를 제거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생명의숲은 이번 산림 피해를 나뭇가지나 잎이 무성한 부분만을 태우며 지나가는 산불인 수관화(樹冠火)와 지표에 있는 잡초·관목·낙엽 등을 태우는 지표화(地表火)로 인한 것으로 예상했다.
소나무림은 솎아베기와 낙엽, 고사지 제거 등 숲 관리를 통한 연소물질 최소화를 비롯해 생활권 조경에 활엽수로 수목을 갱신하는 것에 대한 주민의 인식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일각에서는 소나무에 둘러싸인 마을은 서풍을 피해 숲 위치를 바꾸고, 반대로 영향이 적은 지역은 송이 생산 등을 할 수 있도록 조림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병두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산불 피해지에 대한 자연환경과 지역주민 의견, 산림 정책과 지속가능성 등을 고려해 수종 선택이 이뤄져야 한다"며 "피해지에 대한 복구도 중요하지만, 산림 지도를 펼쳐놓고 지속 가능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 산 경계지점 안전공간 추진…항구 복구 나선다
산림청과 강원도는 황폐해진 산림을 위해 응급과 항구 복구로 나눠 산림복구를 추진한다.
응급복구는 우선 집중호우에 대비해 6월 이전에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산불로 황폐해진 도시경관 회복이 시급한 주택지와 도로변 가로수에 긴급조림부터 이뤄진다.
굴참나무나 은행나무, 느티나무, 백합나무, 벚나무 등 불에 강한 내화성 수종이 대상이다.
기존 수고 0.2∼0.4m의 경제수 위주의 나무를 높이가 2m가량 큰 나무로 심는 등 200ha를 조림을 계획했다.
생태계 복원을 고려한 벌채에 나서는 한편 토양 유실 등 2차 피해 우려지역의 사면 안정화를 위한 산지 사방사업도 벌인다.
항구복구는 산림 기능을 고려해 내년부터 본격화한다.
산림 피해지의 기후와 토양 등 자연환경을 맞는 조림을 확정하는데 면밀한 검토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산림과 인접한 민가나 시설물 경계지점에 안전공간 조성도 추진한다.
산림과 인접한 탓에 주택 화재가 산불로 번지거나, 산불이 주택가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만큼 50m 내외로 경계지점을 이격하는 것이다.
산림당국 관계자는 "임야와 마을 사이에 일정 폭의 바위 정원 개념을 도입하는 방식"이라며 "풀과 관목이 자라지 않는 공원 조성과 임야와 마을 사이 야산 끝자락 등에 방화림을 조성하는 방안 등이다"고 말했다.
당장 내년부터 시범적인 추진계획을 세우고 관계부처에 예산을 건의한 상태다.
피해지 25곳을 대상지로 정하고, 1곳당 4억2천여만원씩 모두 100억원으로 예산을 추산했다.
안전지대 내 침엽수림은 제거해 완충지대를 조성하고, 활엽수림 지역은 숲 가꾸기와 주변 수막 울타리를 도입하는 방안 등도 검토하고 있다.
앞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산불 발생 이후 관계 장관 회의를 통해 임야와 주택이 인접한 곳 사이에 불연성 보호 울타리나 배수로 등을 조성하는 방안 필요성을 제기한 데 따른 후속 조치이기도 하다.
강원도는 산불 발행 우려지역과 훼손된 계류지에 사방댐과 산림유역관리 사업은 물론 물놀이장 등 주민편의시설과 함께 관광시설로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산불 피해지에 복구 실증단지도 조성해 연구와 교육장으로 활용하는 방침도 포함됐다.
강효덕 강원도 산림관리과장은 "피해지역 산림이 본연의 기능을 하기까지 5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하지만, 안전공간을 만드는 등 항구적인 복구로 건강한 숲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ha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