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 아라리오에 '화가의 손'·'화가의 심장' 등 대형 입체회화 전시
'가족사진'부터 '베드 카우치'까지 다양한 시도…"미술은 방식 아닌 언어"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미술가 안창홍(66)의 경기도 양평 작업실에는 쓰레기통이 2개 있다. 일반 쓰레기통 외에 물감, 붓 등 다 쓴 화구를 모으는 통이 하나 더 있다. "다 쓴 것일지라도 물감을 일반 쓰레기와 섞는 것은 용납 못 하겠더라"는 안창홍 고백은 화가로서의 자의식을 보여준다.
안창홍은 7년 전쯤 이 쓰레기통을 열었다가 물감 쓰레기더미 사이에서 붓을 잡은 백골의 손을 봤다. "환각을 본 것이죠. 그런데 문득 공포가 아닌, 삶의 고달픔을 느꼈어요. 나도 백골이 될 때까지 그림을 그려야 하는가, 하는 생각요."
작가는 쓰레기더미에 투명한 레진을 부어 그 환각의 순간을 간직했다. 이를 토대로 높이가 3m에 이르는 대규모 입체회화 연작을 완성한 것은 최근 일이다.
2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라리오갤러리 서울Ⅰ삼청 지하에 전시된 '화가의 손 1'은 봄을 알리는 오색찬란한 꽃 무더기처럼 보인다. 자세히 보면 붓, 롤러, 물감 튜브, 오브제로 쓴 조화 부스러기 등이 마구 뒤엉킨 중앙에 붓을 잡은 백골의 손이 주렁주렁 걸려 있다.
'화가의 손'은 40여년간 그림을 그려온 예술가로서 자신을 투영한 작업이다.
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예술가들이 보통 자신의 삶을 작업과 별개로 둔다"라면서 "나는 이번에 적극적으로 나 자신을 작업에 밀어 넣어 보자고 마음먹었다"라고 설명했다.
'화가의 손1' 옆에는 각각 유사 금박과 잿물 안료로 덮은 입체회화 2점도 함께 있다. 각각 성공한 예술가,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한 예술가의 삶을 뜻한다.
작가는 "시간과 운이 비껴가면서, 또는 맞아떨어져 화가의 삶이 달라진다"라면서 "그런 점에서 화가의 삶은 소시민의 삶과도 연결되는 바가 있다"라고 말했다.
2016년 국내 유수 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하고 '맨드라미' 연작 완판을 지켜본 안창홍은 스스로 어떠한 쪽에 속한다고 생각할까. 그는 명확한 답은 않은 채 "일단 팔리는 작가라는 건 행운"이라고 말했다. "감사하는 마음에 작품 판 돈을 노후 대책으로 모아두지 않고 이번 작업에 투자했습니다. 술값 외에는 개인이 착복하지 않겠다는 뜻이죠. (웃음) "
"그림은 누구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다. 방식이 아니라 자기 언어"라고 믿는 안창홍은 제도권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다. 대신 다양한 흐름을 익혀가며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하려 애썼다.
지난 작업을 돌아보면, 산업화 사회에서 와해한 가족사를 다룬 '가족사진'부터 눈을 감은 인물에 그림을 덧그려 역사 속 개인 비극을 다룬 '49인의 명상', 소시민 누드를 그린 '베드 카우치'에 이르기까지 변화무쌍하다. 작가 자신도 도록 서문에서 "죽 끓듯 하는 변덕과 호기심, 가보지 않은 길로 발을 내디디고 싶어 하는 모험심 덕분에 몸은 늘 고달프다"고 자탄했다.
아라리오갤러리 2층에서는 역사 속에서 희생된 수많은 이들을 그려낸 '이름도 없는…'과 현실 부조리를 깨닫지 못하는 이들을 겨냥한 '마스크-눈 먼 자들' 등 보다 현실에 날을 세운 작업을 감상한다.
전시장을 한 바퀴 둘러본 작가와 다시 '붓 잡은 백골' 이야기를 나눴다. "백골이 될 때까지 이걸(작업을) 계속해야 하는가, 하는 푸념 끝에 더 작업에 임하게 됐어요. 그만큼 화가로 죽겠다는 반대적 결심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죠. 무덤에 들어가기 전까지 작업하다 죽는 것, 이것은 제 현실이면서 미래이기도 합니다."
전시는 6월 30일까지.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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