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이쇼라스!"
세월에 닳은 무릎이 삐걱댄다. 입에선 단내가, 발톱에선 피가 난다. 그래도 어린 발레 선생은 단호하게 주문한다. 이쇼라스, 러시아어로 '다시 한번'이라는 뜻이다.
한국적 가치를 표방해온 서울예술단의 신작 창작가무극 '나빌레라'가 지난 1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했다.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발레에 도전한 노인과 방황하는 청춘이 발레를 통해 우정을 쌓아가는 성장담이다. 남성 발레리노의 교과서로 불리는 이원국이 운영하는 이원국발레단이 실제 모델이다.
제작진과 출연진은 2일 오후 3시 토월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나빌레라'가 "착하고 따뜻한 공연"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일흔 노인 덕출은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일생을 통틀어 가장 진지하게 꿈을 좇는 새내기 발레리노다. 스물셋 채록은 빛나는 재능을 가졌지만 잦은 부상에 자책하는 발레 유망주다.
'나빌레라'는 덕출과 채록을 중심으로 그 흔한 사랑 이야기 하나 없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뚝심을 보여준다. 채록은 덕출에게 발레를 가르치고, 덕출은 채록의 다친 마음을 보듬는다. 군무 장면에선 목발을 짚고도 피루엣(한쪽 발로 서서 빠르게 도는 동작)에 도전하는 중년 여인, 어설퍼도 행복하게 춤추는 인물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들을 한 데 묶는 말은 '꿈'이다.
심재형 연출은 "제가 가장 아끼는 게 (군무) 그 장면"이라며 "클래식이든 발레든 우리 삶에서 너무 멀지 않았으면 하는 게 제 소신이다.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즐기는 게 이 시대에 더 맞지 않겠나. 그게 원래 발레가 가진 뜻일지 모른다. 예술이 일상에 스며들어 향유하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본을 맡은 박해림 작가는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이 몸의 뼈와 근육을 바로 세우는 발레를 한다는 것에 굉장한 메타포(비유)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힘들어도 바로 서고 중력을 거슬러 하늘로 향하는 일, 이런 게 인생 같다. 그런 발레와 인물들의 꿈을 연결하고 싶었다"고 거들었다.
안무 연출을 맡은 유회웅 발레리노 겸 안무가는 "꿈이라는 단어와 발레가 소재가 돼 기뻤다"며 "서울예술단원들은 한국무용을 토대로 한 분들이 많아서 (발레와) 호흡 자체가 달라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덕출 역을 맡은 배우 진선규와 최정수는 분장 덕에 언뜻 일흔 노인으로 비쳤다. 칫솔에 헤어제품을 묻혀 일일이 머리카락에 칠해 백발 느낌을 냈다고 한다. 최정수는 "하얗게 하려고 파운데이션을 가미해서 머리 감을 때 힘들다"고 웃으며 말했다.
스크린의 천만 배우에서 고향인 무대 위로 복귀한 진선규는 "공연을 오래 했다고 생각했는데, 매번 할 때마다 안절부절못하고 대사를 외웠는데도 안 외운 것 같다. 중얼중얼하며 혼자 복습 중"이라며 "잘 해나가려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공연은 오는 12일까지. 6만∼9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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