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나인호 교수가 쓴 '증오하는 인간의 탄생'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한 명의 백인 남성이라도 살아있는 한 그들은 결코 우리의 땅을 정복할 수 없으며 우리들을 대체할 수 없다."
지난 3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이슬람 사원에서 총기를 난사해 전 세계에 충격을 준 호주 출신 백인 남성은 범행 동기를 이같이 밝혔다. 백인이 정착해 주류를 이루는 땅에서 다른 인종이 증가하는 상황을 묵과하지 못해 50명의 목숨을 앗아간 무참한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인종주의에 바탕을 둔 끔찍한 사건은 이전에도 종종 발생했다. 일례로 2011년 7월 노르웨이에서는 신나치주의자를 자처한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77명을 살해해 경악과 분노를 야기했다.
다른 인종에 대한 배타적 감정은 보통 비이성적인 현상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역사학자인 나인호 대구대 교수는 신간 '증오하는 인간의 탄생'에서 "인종주의는 단순히 우발적이거나 비합리적이고 일탈적인 현상이 아니라 서양에서 발원해 전 세계로 퍼진 대표적 근대사상 혹은 체계적 근대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한다.
그는 책에서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사이에 등장한 서양의 인종사관과 인종의 역사철학을 사상사 측면에서 정리하고, 근대 인종주의에서 어떻게 증오라는 감정이 나왔는지 추적한다.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 혹은 인종을 중심에 두고 다른 사람을 타자로 규정하는 행태는 동서양에 고루 존재했다. 고대 그리스인은 세계를 '헬레네인'과 '야만인'으로 나눠 인식했고, 중국도 화(華) 주변에 오랑캐인 이(夷)가 살아간다고 봤다.
그래도 고대에는 타자를 교화 혹은 동화의 대상으로 여겼지만, 인종주의를 추종하는 부류는 타자를 지배와 착취의 대상 혹은 짐승처럼 말살해야 할 존재쯤으로 하찮게 본다는 것이 저자 판단이다.
저자는 인종주의를 서양인이 일반적으로 식민지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인종 우월주의, 귀족의 염세적 인종주의, 인종 증오주의를 낳은 시민의 국가 인종주의로 분류하면서도 실제로는 세 유형이 엉킨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그는 "20세기 초 서양의 인종주의는 민족주의, 제국주의와 삼위일체를 이루며 본격적 증오 이데올로기로 발전했다"며 "우리는 적에게 둘러싸여 있고, 신체적·지적·도덕적으로 인종적 퇴화에 직면했다는 위기의식이 증오의 원천이었다"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이처럼 근대 민족주의, 유럽중심주의, 외국인 혐오가 뒤섞인 인종주의는 차별이나 혐오 이상의 파급력을 지니기 때문에 '인종주의'를 '인종차별주의'나 '인종혐오주의'와 반드시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 지적처럼 20세기 초에 나치가 유대인을 대한 태도는 인종차별이나 인종혐오를 넘어선 비인간적인 행태였음이 분명하다.
문제는 인종주의가 21세기에도 사라지지 않고 곳곳에 잠복했다는 점이다. 세계 각지에서 '순혈주의'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살아가고, 이슬람과 난민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높아간다.
저자는 보론에서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 발달로 인해 인종주의적 하위문화가 주류문화로 도약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조성됐다"면서도 "이성이 욕망의 민낯을 까발릴 수 있다고 믿는다"고 적었다.
역사비평사. 548쪽. 2만5천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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