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농철 인력난] "일당 12만원, 말 안 통하는 외국인도 감지덕지"

입력 2019-05-04 08:01  

[영농철 인력난] "일당 12만원, 말 안 통하는 외국인도 감지덕지"
농가마다 "일손 없다" 아우성…70∼80대 노인도 귀한 대접
동남아 이어 러시아까지…다국적 농부로 채워지는 농촌 들녘


(전국종합=연합뉴스) "온종일 허리 한 번 못 펴고 일해도 다 따기 힘들어유. 깻잎이 오므라들기 전에 수확을 끝내야 하는디…"
충남 금산군 추부면에서 깻잎 농사를 짓는 최광국(64) 씨는 캄보디아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 2명을 두고 일한다.
지난해 9월 파종한 깻잎이 이제 허리 높이로 자라 660㎡ 규모의 비닐하우스 한 동을 가득 채웠다.
이른 더위 속에 하우스 내부는 조금만 움직여도 땀범벅이 되기 일쑤지만, 애써 키운 깻잎이 더위에 늘어지기 전 수확하려면 한눈팔 시간이 없다.
깻잎 농사는 일 년 내내 쉴 틈 없는 일이지만, 나들이객이 증가하는 봄철에는 수요가 부쩍 늘어 농민들의 마음까지 덩달아 바빠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맘때는 내년 농사를 위해 씨앗도 뿌려야 하기 때문에 숨돌릴 틈이 없다.
그는 10동의 비닐하우스 중 절반은 내년 농사를 위해 거름을 덮어놓고, 나머지만 관리한다. 하루 수확하는 깻잎이 1천200장짜리 24∼25박스 정도 되는데, 인건비가 치솟으면서 점차 수지 맞추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작황이 좋지 않거나 깻잎값이 떨어지면 직원들 월급 주기도 빠듯하다.
그는 "최저임금제로 인해 외국인도 내국인과 똑같은 월급을 줘야 한다"며 "말이 통하지 않고 일이 서툴러 작업능률은 떨어지지만, 워낙 일손이 모자라니 달리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볶음용으로 출하되는 깻잎 파지를 따거나 줄기에 붙은 잔가시를 떼어내는 일은 마을 어르신들의 몫이다. 대부분 70∼80대 노인이지만, 그는 하루 품삯 3만5천∼4만원을 주고 있다.

오종현 추부깻잎연합회장은 "우리 마을 할머니들은 엉덩이에 아예 스티로폼 의자를 매달고 다닌다"며 "키가 작은 깻잎을 따려면 쪼그려 앉은 채 작업해야 하니까 아예 달아놓고 다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작은 면 단위인 우리 마을에 정형외과랑 한의원이 왜 그렇게 많은 줄 아느냐"며 "우리 마을 사람치고 관절염, 신경통, 디스크를 앓지 않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충남 홍성군 장곡면에서 딸기 농사를 짓는 김필규(64) 씨도 하우스 비닐을 제거하고 땅을 갈아엎는 이맘때가 가장 바쁘다.
8동의 비닐하우스 작업을 위해 용역으로 하루 7∼8명씩 불러오는데, 지난해 10만원이던 일당은 올해 12만원까지 올랐다.
외국인 인부도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등 주로 동남아시아 출신들이 많았는데, 올해는 러시아 국적 근로자가 부쩍 늘었다. 한마디로 다국적 농부들이 농촌 들녘을 채워가고 있다.
숙련된 인력은 없고 다들 일이 처음이다 보니 애써 확보한 인부라 해도 농작업 시범을 보이다 보면 오전 시간이 금세 지난다.
김씨는 "인부들은 오전 7시 30분에 왔다가 오후 5시면 퇴근한다고 트럭을 타는데, 정작 나는 일이 끝나지 않아 2∼3시간 더 남아있어야 한다"며 "마을 노인들이 품앗이로 일하기도 하지만, 일이 몰릴 때는 그마저 여의치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전남 무안군 현경면 일대에서는 요즘 고구마 순 심는 작업이 한창이다.
이 지역 고구마밭은 960여 ㏊에 달하는데, 지난달 고구마 순 심는 작업이 시작되면서 농가마다 일손 구하기 전쟁을 치르고 있다.
고구마 순은 사람 손으로 일일이 심어야 하는 만큼 인력 확보가 필수다. 기계를 이용해 밭고랑의 비닐 덮는 작업 등은 할 수 있지만, 순을 심을 때는 반드시 사람 손이 필요하다.

광주나 목포에서 원정 온 노인과 외국인들은 오전 6시 30분께 일을 시작해 오후 5시면 집으로 되돌아간다. 마음 같아서는 좀 더 붙들고 싶지만, 근로조건이 그렇다 보니 농민들의 마음만 새카맣게 타들어 간다.
이달 말이면 양파 수확이 시작되기 때문에 고구마 파종은 이달 안에 끝내야 한다.
이봉환(65) 씨는 "양파 수확이 맞물리면 그야말로 일손 구하기 전쟁이 시작된다"며 "과거에는 일 잘하는 사람을 고르기도 했지만, 요즘은 이런저런 거 따질 상황이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대도시와 인접한 경기도 화성시의 경우 논농사를 짓는 1만 가구 농업인의 평균 나이가 64세 정도로, 급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농사 규모가 크지 않아 대부분 가족끼리 농사를 짓지만, 모내기 철이나 추수철 등 농번기에는 인력 수요가 몰려 외국인 인부 구하기도 쉽지 않다.
밭작물의 경우는 인력수급 상황이 더 좋지 않다.
화성에서 원예농장을 운영하는 A(27) 씨는 "원예는 어차피 경매를 통해 나가기 때문에 원가를 낮추지 못하면 손해를 보게 된다"며 "낮은 인건비로 생산량을 맞추려다 보니 외국인 인부를 고용하는 농장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농사 일이 고되다 보니 기껏 데려온 외국인 인부조차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제조업 쪽으로 떠나는 경우가 많다"며 "일 좀 가르쳐 쓸만해지면 떠나기 때문에 인력난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운창 최찬흥 박주영 기자)
jyou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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