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실화 아니어도 손배 책임 인정…"불나지 않게 관리했어야"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옆 건물에 난 불이 우리 집까지 옮겨붙었다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
A씨는 경기도 안산에 땅을 빌려 비닐하우스를 짓고, 농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옆 비닐하우스에는 B씨가 컨테이너 3대를 들여놓고 사무실로 이용했다.
그런데 2016년 어느 날 밤, B씨 비닐하우스에서 불이 났다. 불은 A씨 비닐하우스에도 번져 집기 등을 태웠다.
1천600만원의 재산 피해를 본 A씨는 누구에게 손해배상을 받아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했다.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화재였기에 B씨에게 위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B씨 비닐하우스 내 냉온수기 전원이 항상 켜져 있어 전기적 원인으로 불이 났을 가능성이 높았으나, 냉온수기 배선에서 합선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이 화재는 '원인 미상'으로 처리됐다.
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하다 어려움을 겪던 A씨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소송에 나섰다. 그는 B씨가 컨테이너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불이 난 것이므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민법 758조에 따르면 컨테이너·비닐하우스 같은 공작물의 설치·보존 하자로 타인이 손해를 입었을 때는 공작물 점유자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이에 맞서 B씨는 자신에게는 화재 발생 책임이 전혀 없으며, 설령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 해도 중대한 과실로 불이 난 게 아니기 때문에 손해배상액이 감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6일 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법원은 비닐하우스 설치·보존에 하자가 있었기 때문에 B씨가 A씨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지난 3월 판결했다.
수원지법 안양지원 민사5단독 신동헌 판사는 "피고(B씨)는 소방시설 및 화재경보장치 등을 설치해 화재 확산을 방지하려고 조치하고,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연에 관리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소홀히 해 결국 피고 비닐하우스에서 발생한 화재가 원고(A씨) 비닐하우스에까지 번졌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신 판사는 B씨가 ▲ 전기차단기를 내리지 않고 퇴근해 전기적 요인으로 인한 화재 가능성이 높았던 점 ▲ 컨테이너가 공터에 인접해 있어 제삼자가 들어와 불을 지를 가능성이 있는데도 출입문을 잠그지 않은 점 ▲ 소방시설·화재경보장치를 설치하지 않은 점 등을 손해배상 책임의 이유로 들었다.
다만, B씨가 중대한 과실을 저질렀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손해배상 책임을 50%로 제한해 8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소송을 도운 김민기 법률구조공단 공익법무관은 "화재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해도 공작물 설치 또는 보존상 하자가 손해 발생의 한 원인이 됐다면 그 점유자에게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을 이번 판결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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