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멘텀 유지토록 북미 독려하고 중·일·러 유기적 협력 끌어내야"
"중재자 역할 한계도 노출…북·미에 할 말 하는 당사자 역할 필요"
中전문가 "文정부 흔들리면 북핵정국 요동…사즉생으로 초심 지켜야"
日전문가 "한일 갈등 수습·관계 관리 위한 외교적 노력 필요" 주문
(서울·워싱턴·베이징·도쿄·모스크바=연합뉴스) 박세진 유철종 김정선 심재훈 백나리 특파원 류지복 기자 = 미·중·일·러 한반도 주변 4개국의 전문가들은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 성사 등 문재인 정부가 지난 2년간 한반도 평화체제 달성을 위해 쏟아온 노력에 주목했다.
각국 전문가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으로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두 차례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며 비핵화 여정의 실마리를 찾고 동북아와 한반도 긴장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 대해서 한목소리로 긍정적 평가를 했다.
그러나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난 이후 북한 비핵화와 대북 제재 완화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문 대통령의 '중재외교'가 모멘텀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북미 지도자가 좀 더 대담한 조처를 하도록 독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북핵이 북미 간의 문제도, 한국이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도 아닌 만큼 문 대통령이 북한과 미국을 넘어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다른 주변국과도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도 내놨다.
일본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북핵 해결 노력을 평가했지만 위안부 합의나 강제 징용 배상판결 등 한일 간 불거진 갈등을 수습하고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인 외교적 노력을 주문하기도 했다.
◇미국
▲해리 카지아니스 미국 국익연구소 국방연구소장
문 대통령은 한국이 직면한 가장 어려운 사안을 택해 북한과의 관계개선뿐만 아니라 되돌려질 수 없는 한반도 평화체제 달성에 대통령직을 거는 용기를 보여줬다. 쉬운 이슈 대신 한국이 직면한 가장 힘든 이슈를 택한 것이다. 이를 위해 정치적으로 취약해지는 것을 감수하는 용감함과 의지를 보여줬는데, 이는 많은 정치인이 지금은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취임 후 얼마 안 돼 북한이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하는 상황이었음을 고려하면 문 대통령의 도박은 대체로 성과가 있었다. 북미 간의 긴장을 낮추는 것에 관한 한 문 대통령은 평화 프로세스가 와해하지 않게 하는 필수적인 접착제와 같았다. 솔직히 문 대통령은 북미를 성공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복귀시키고 틈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단거리 발사체 발사로 미국 등 세계에 북한의 전력이 강화되고 있음을 상기시키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핵전쟁 위협과 개인적 모욕의 시절로 돌아가는 초입에 들어선 것인지 우려되기도 한다.
▲프랭크 엄 미국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문 대통령은 취임 후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남북관계를 증진하며 북미 관계를 촉진하는 데 주목할 만한 일을 했다. 그는 대북 최대압박 이행과 북한 비핵화 강조를 포함해 강력한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것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 외교를 독려하는 것 양쪽에 한발씩 걸쳐왔다.
문제는 북미 간 비핵화와 제재 완화에 진전이 있지 않은 한 모멘텀을 잃는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한국이 한반도 문제에 있어 운전석에 앉아야 한다고 보지만 현재로서는 미국과 북한이 운전대를 잡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북미가 더 큰 유연성을 가질 수 있도록 독려하는 셔틀외교를 지속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대담한 조처를 하라고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에게 했던 조언을 스스로 취할 수 있을 것이며, 대북 인도적 지원같은 문제에 대해 원칙 있는 행동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
▲진징이(金景一) 베이징대 교수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갈등이 최고로 치닫던 위기국면에 출범, 남북관계를 지렛대로 북미 관계를 추동하는 성공적인 중재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가 역사적인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과 하노이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그렇지만 하노이 정상회담의 결렬은 중재자로서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데는 미국의 전략적 접근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 견제용 '인도-태평양 전략'을 펼치는 미국으로서는 전략적으로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그렇지만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북·중·러가 결속해 미국과 대결할 가능성은 없다. 왜냐하면 중국도, 러시아도 구(舊)소련의 전철을 밟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은 지난 역사의 패턴을 뒤집는 발상이라 하겠다. 한반도 문제를 한반도가 주도하겠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지난해부터 한반도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변화는 이 발상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한국의 중재자 역할은 북미 관계 초기에는 필수적이었지만 북미가 직접 대화를 시작한 상황에서는 중재자 역할만으로는 미국도, 북한도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는 미국이나 북한에 할 말을 하는 당사자 역할을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뤼차오(呂超)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연구원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공동성명을 실현해냈다. 이것은 역사적인 긴장 완화이며, 대북 정책에 있어서 비교적 큰 성공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은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고, 중국과 북한은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한국이 미국과 관련 있는 문제에서는 완전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남북철도 등 대북 합작사업에서 노력했지만, 결정권은 한국에 없었고 미국 제재의 영향을 받았다.
제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한국이 합당한 역할을 했지만,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제 역할을 못 했다. 이해는 하지만, 한국은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북한은 평화 안정, 정치·경제협력에서 발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정책이 미국의 간섭을 받기 때문에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비핵화 입장을 고수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 중국과 더욱 잘 협력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흔들리면 남북관계가 흔들리고 북핵 정국이 다시 요동칠 수 있다. 사즉생의 결단력으로 초심을 지키고 확장해 나가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일본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
한국 시민의 '촛불혁명'으로 2017년 5월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북·미 전쟁의 위기를 피하는 큰일을 이뤘다. 문 대통령은 두 나라 사이에 들어가 먼저 김정은 위원장을 설득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 뜻을 전달해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토록 했다. 문 대통령의 역할은 동북아를 북·미 전쟁의 위기에서 구해낸 위대한 성과다.
문 대통령의 성공으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궁지에 빠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북한에 제재와 군사적 압력을 가해 핵무기를 포기시키려던 아베 총리가 평화 프로세스 속에서 오도 가도 못한 모양새가 된 것이다. 아베 총리가 2019년 1월 시정방침 연설에서 한국을 무시하고 상대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인 것은 그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그러나 아베 총리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2015년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한 문 대통령 태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이 합의에 대해 한국 국민이 반발하고 있다는 입장을 아베 총리에게 전달하고도 재협상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양국 간 합의에 따라 전 정권이 만든 화해·치유재단을 해산시킨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일본 정부가 내놓은 10억엔에서 생존피해자 36명에게 치유재단이 1천만엔씩을 지급한 것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문 대통령 입장을 일본 국민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
지금은 특히 '전시노무동원 피해자'(징용공) 문제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한일 간 분쟁문제 해결이라는 측면에서 고민하는 것 같다. 동북아 평화라는 문 대통령의 목표 달성을 위해 북일 간 국교 정상화의 진전이 필요하다고 볼 때 한일 간 분쟁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이 진행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대학원 교수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의 방향에 대해선 평가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2017년 북한의 핵실험·미사일 발사 이후 미국에서 대북 '코피 작전'이 거론되는 등 미북 사이에 위기감이 있었는데, 중재적 역할을 함으로써 이를 극복하려 했기 때문이다. 일단 위기는 극복했다고 본다. 긴장 상황을 완화하고 당시 거론된 전쟁 발생 가능성을 낮췄다.
그런데 결과에 대해선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 등을 봤을 때 한국 외교가 상당히 역부족이 아닌가 하는 평가도 할 수밖에 없지 않나. 방향은 좋았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한 힘이 부족했다고 평가한다.
미국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에게 너무 집중해 한국 입장을 미국 내에 전반적으로 설득하지 못한 것으로 보여 아쉽다. 북핵 문제는 한국 정부에 중요하지만, 일본도 마찬가지다. 북핵 문제와 한일관계는 관련돼 있다. 한국이 원하는 외교 방향을 끌어내기 위해 일본을 좀 더 이용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얘기도 있다.
징용판결 이후 한국 정부가 대응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는데 아직 발표된 내용이 없다. 무엇인가 입장을 발표해야 한다고 보는데, 한일관계 및 위기를 관리하려는 노력도 계속해야 한다.
북핵 문제와 한일관계 모두 어려운 문제라는 점을 안다. 미국에 대해선 광범위하게 설득하는 노력이, 일본에 대해서도 협력을 얻어내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협력자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러시아
▲글렙 이바셴초프 전(前) 주한 러시아 대사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한반도 안보 문제 해결과 한러 관계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한반도 안보 문제와 관련해 보자면 문 대통령 집권과 함께 남북 대화가 시작됐고 이후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아주 긍정적인 프로그램들도 제안됐다.
물론 유감스럽게도 모든 제안 조치들이 이행되지는 않았지만, 제안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흥미롭고 유망한 것들이었다.
문제는 많은 제안이 대북 제재와 연계돼 있다는 것인데 이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문 대통령이 선택한 노선은 아주 긍정적이며 남북한뿐 아니라 러시아, 중국을 포함한 모든 관련국의 안보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다. 남북한 관계개선에 한반도 핵 문제 해결의 많은 부분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추진은 무엇보다 수십 년에 걸친 남북한 군사대립의 결과다.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위한 원인도 소멸한다. 미국도 북한에 대해 어떤 행동을 취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문 대통령은 한러 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많은 일을 했다. 양국 간에는 긴밀한 통상·경제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2월 한러 정부 간에 서명된 '9개 다리 행동계획'(9개 분야 양국 협력 계획)은 아주 유망한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 이행은 양국 통상·경제 관계를 훨씬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더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다자 틀 내에서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이 이뤄지고, 북한의 핵시설 폐쇄 등에 대한 상응 행보로서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를 완화하도록 한국이 미국 등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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