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고위 공무원으로서 위법한 상관 지시 거부할 의무 있어"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관여했다는 이유 등으로 정직 처분을 받은 문화체육관광부 고위 공무원이 불복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함상훈 수석부장판사)는 문체부 고위 공무원 A씨가 문체부 장관을 상대로 낸 정직 취소소송에서 최근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A씨는 특정 문화예술인·단체를 부당하게 지원배제하는 데 관여했다는 이유 등으로 2017년 10월 정직 1월의 징계를 받았다.
A씨의 징계 사유엔 문체부가 2014년 '늘품체조'를 시연하게 된 경위를 묻는 국회의원 질의에 허위 답변한 것도 포함됐다. 늘품체조는 당시 김종 2차관이 최순실 씨로부터 자료와 관계자 연락처를 받아 시연이 성사됐다. 그러나 김 전 차관의 지시에 따라 국회 답변에는 '외부에서 자료를 받아왔다'는 이야기를 쏙 뺐다.
A씨는 정직에 불복해 소청심사를 청구했다가 기각되자 소송을 제기했다. 자신은 블랙리스트를 지시하거나 추진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관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등 지원배제를 막으려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국회에 허위 답변을 한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 해도 징계 수위가 무겁다는 주장도 폈다.
법원은 그러나 A씨의 징계 사유가 인정되고 수위 또한 적정하다며 그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우선 "원고가 처음부터 지원배제에 관여하거나 지시하지는 않았고 당시 분위기상 청와대의 위법한 지시를 적극적으로 거부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는 주장도 수긍할 면이 없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원고는 우리나라 예술 정책을 실무적으로 총괄하는 고위 공무원으로서 상관의 위법·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공무상 의무가 있었다"며 "그것이 불가능했다면 최소한 맡은 업무를 회피하는 식으로 업무를 하지 않았어야 했다"며 지원배제를 묵인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당시 청와대에서 관련 자료를 파기하라고 지시하자 A씨가 이를 부하 직원에게 전달하는 등 지원배제 활동에 간접적으로 가담했다는 점도 꼬집었다.
그러면서 "지원배제가 이뤄진 기간과 정도가 가볍다고 할 수 없고 이로 인해 문예위 등의 존재 이유가 유명무실해졌으며 그 공정성에 대한 문화예술계와 국민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비판했다.
늘품체조와 관련해 국회에 허위 답변을 한 점을 두고도 "공무원은 자신이나 조직의 잘못을 숨기기 위해 거짓 답변을 해서는 안 된다"며 "거짓 답변을 한 경우 3권분립의 기초를 무너뜨린 것으로 그 책임이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이어 "부하 직원에게 3차례에 걸쳐 거짓 답변을 하도록 했는데 이는 비위의 정도가 심할 뿐 아니라 고의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김 전 차관의 지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A씨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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