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슬픔·서민 애환 위로한 작사가 겸 방송작가 故유호 영면

입력 2019-05-08 10:48  

시대 슬픔·서민 애환 위로한 작사가 겸 방송작가 故유호 영면
빈소에 소설가 김훈·방송작가 이금림·김정수 등 조문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신라의 달밤' 작사가이자 1세대 드라마 작가인 유호(본명 유해준)가 8일 98세 일기로 영면했다.
이날 오전 10시30분 가톨릭대학교 은평 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발인식에는 유족과 방송계 인사들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지난 6일 숙환으로 별세한 고인의 빈소에는 부친 대부터 고인과 인연이 있던 소설가 김훈을 비롯해 배우 강부자와 유명 드라마 작가 이금림, 김정수, 이선희 씨 등이 조문했다.
유호는 광복 이후 작사가 겸 방송 작가 1호로 1940~70년대 가요계와 방송계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1939년 경성제2고등보통학교(경복고)를 졸업한 뒤 1942년 일본에서 유학하다가 극작가로 등단했다.
1945년 서울중앙방송국 편성과에 입사해 드라마를 집필한 고인은 조선방송사업협회가 추진한 건전가요 보급에 동참해 작곡가 박시춘의 요청으로 '목장의 노래' 등에 가사를 쓰며 작사가로 첫발을 디뎠다.
이후 경향신문 문화부로 자리를 옮긴 고인은 1947년 박시춘이 작곡하고 유호가 작사한 현인의 '신라의 달밤'이 크게 히트하자 기자와 작사가를 겸업했다. 박시춘이 설립한 럭키레코드에서 '유호-박시춘-현인' 트리플 콤비는 '럭키 서울', '비 나리는 고모령', '고향만리' 등을 만들었다.


또 고인은 한국전쟁 당시 진중(陣中) 가요 '전우여 잘 자라'와 '전선야곡', 휴전 직후 '이별의 부산 정거장' 가사를 쓰는 등 시대의 슬픔을 품은 노랫말을 만들었다.
이밖에도 '사나이로 태어나서'로 시작하는 군가 '진짜 사나이'를 비롯해 '낭랑 18세', '맨발의 청춘', '종점', '길 잃은 철새', '떠날 때는 말 없이', '짚세기 신고 왔네', '님은 먼 곳에' 등 숱한 노래와 드라마 주제가에 가사를 입혔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지내고 언론사를 나온 고인은 1960~70년대 본격적으로 드라마를 집필하며 '유호 시대'를 일궜다.
1961년 개국한 TBC 동양방송 '초설'을 시작으로 'TBC 일요극장'으로 방송된 '맞벌이 부부', '짚세기 신고 왔네' 등이 큰 인기를 끌자 방송사는 '일요극장'을 '유호극장'이란 타이틀로 바꿔 방송하기도 했다.
그외 드라마 대표작으로는 '서울야곡'을 비롯해 '딸', '님은 먼 곳에', '돼지', '종점', '파란 눈의 며느리' 등이 있으며 생전 100여 편을 집필했다. 1993년 SBS TV 추석특집극 '왔습니다'를 끝으로 절필했지만 오랜 시간 함께 한 연출가들을 위한 작품을 한두편 더 쓰기도 했다.
고인은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 고문 겸 교육원장 등을 지냈으며 2002년 방송인 명예의전당에 헌정됐고 2011년 제2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전날 빈소를 찾은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 씨는 "현재까지 최다작 기록을 보유한 방송작가인 동시에 수많은 노래와 드라마 주제가를 통해 서민의 휴머니티를 대변해온 작사가셨다"며 "심혈을 기울인 노랫말, 서민의 삶을 그린 드라마를 통해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인물"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 2009년 고인과 인터뷰를 했다는 박 평론가는 "당시 선생님은 자신의 삶을 글로 정리하고 계시다고 했다"며 "원고 앞부분에 '유호지'(兪湖誌)라는 친필 제목이 적혀 있던 기억이 난다. 가정사와 집안의 비밀을 담은 개인적인 원고로 선생의 후손들에게만 물려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고 떠올렸다.
고인의 장지는 경기도 파주시 서현추모공원이다.
mim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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