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증오에 찬 여자가 지키려 한 '우주'

입력 2019-05-08 16:17  

외롭고 증오에 찬 여자가 지키려 한 '우주'
김인숙 장편소설 '벚꽃의 우주'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소설은 무엇보다 이야기가 중요하다. 예술작품으로서 탐미적 가치도 놓칠 수 없지만 어쨌든 소설은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본질이다.
장르 소설이 아닌 정통 문학에서는 요즘 이미지의 나열, 신변잡기식 독백으로 흐르는 듯한 소설이 많아진 경향을 보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아류 같은 작품이 간간이 눈에 띈다.
김인숙이 5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벚꽃의 우주'(현대문학)는 그래서 돋보인다. 소설의 본령이 무엇인지 아는 중견 작가의 내공이 드러난다.
작품 속엔 많은 사건과 사연, 공간과 시간이 씨줄·날줄로 얽히고설켜 읽는 이들을 빨아들인다.
흔할지 모를 비련의 여주인공 이야기인데도 전혀 기시감 없이 낯설고 기묘하고 긴장된다. 미스터리극과 같은 의문 유발 장치가 곳곳에 포진한다. 탄탄한 구성과 안정감 있는 문체가 이야기 흐름을 힘있게 끌고 간다.
중년 여성 미라가 필사적으로 지켜내고자 하는 그 자신만의 '우주'에 관한 이야기다.
그 '우주'는 지금 미라가 사는 집이자 생활의 터전인 '미라 펜션'이고, 때로는 미라의 가정이며, 때로는 죽은 엄마가 살아있는 상상 속 가족의 세계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편모마저 잃은 미라는 고독하고 불안하며 증오에 찬 삶을 산다. 성인이 돼 만난 짝이 어둡고 충격적인 과거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결혼해 아들을 낳는다.
미라는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죽게 만든 어머니의 옛 애인이 폐가가 된 옛집을 지키며 가꿔왔던 사실을 알고, 그의 도움을 받아 폐가를 허물고 펜션을 짓는다. 그런데 펜션에서는 의문의 사고사가 잇따르고 그 중심에 미라가 있었다.



상처와 증오로 가득한 미라가 악착같이 지키려 한 세계는 시공간이 뒤섞이고 여러 명의 '나'와 여러 가지 가능성이 공존하는 평행우주다.
미라는 죽은 어머니의 옛 애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저씨, 그날 만일 주사위가 다르게 던져져서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나는 훨씬 더 행복할 수 있었을까요? 나는 아저씨를 걱정시키지 않는 딸로 자라날 수 있었을까요? 그러면 민혁이라는 남자를 만나지 않게 되었을까요? 그런 건 상상하고 싶지도 않아요. 아무 의미도 없는 상상이잖아요. 게다가 그러면 우리 수온이가 태어나지 못했을 테니까요. 다시 산다고 해도 나는 우리 수온이를 태어나지 못하게 하는 어떤 선택도 하지 않을 거니까요."
작가 김인숙은 1983년 조선일보를 통해 등단해 장편소설 '핏줄', '봉지', 소설집 '함께 걷는 길', '브라스밴드를 기다리며' 등 수많은 장편과 단편소설집을 냈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이수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받으며 거장을 향한 길로 정진 중이다.
이 소설은 현대문학이 진행 중인 '핀 시리즈' 13번째 작품이다. 당대 가장 예리한 작가들을 선정해 작품을 월간 '현대문학' 지면에 싣고 단행본을 발간하는 샐러리북 프로젝트다. 280쪽. 1만3천원.
lesli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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