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합의 유지, 외교적 해법 유럽에 주문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란 정부는 8일(현지시간) 핵합의(JCPOA)에서 정한 핵프로그램 제한과 관련한 의무를 일부 이행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국제사회에 항변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8일 대국민 연설에서 이런 이란 정부의 결단을 발표하면서 "핵합의 서명국 5개국에 서한을 보냈다"며 "이 서한에서 나는 '귀국의 조언에 따라 우리는 1년간 참았다'라고 적었다"고 말했다.
이날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핵합의 탈퇴를 선언한 지 꼭 1년 되는 날이다.
지난해 5월 8일 이후 유럽 측 서명국(영·프·독)과 유럽연합(EU)은 이란의 '맞탈퇴'를 우려해 이란과 유럽 회사가 계속 교역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제안하면서 핵합의를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애초 EU와 이들 3개국은 미국의 제재를 우회해 이란과 교역을 전담하는 금융 특수목적법인(SPV)을 지난해 11월까지 세우겠다고 했지만 차일피일 지연되다 올해 1월 '인스텍스'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이 과정에서 유럽 내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이 법인의 본부를 어느 나라에 두느냐를 두고 서로 미루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인스텍스가 탄생했으나 넉 달간 운용 실적은 '0'이다.
로하니 대통령은 8일 "유럽은 핵합의를 지키겠다고 말만 하고 실제 한 일은 없었다"며 "우리는 지난 1년간 인내하고 기다리는 전략을 택했고 핵합의를 지켰으나 유럽 측의 변화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6년 1월 핵합의가 이행된 이후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분기마다 낸 보고서에서 모두 이란이 핵합의를 준수한다고 확인했다.
핵협상 타결의 주역인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도 7일 "불행히도 EU와 국제사회는 미국의 압력에 맞설 능력이 없었다"라며 "지난 1년간 미국의 핵합의 위반에 대해 우리가 유지한 '인내 전략'은 끝났다"고 말했다.
'새로운 핵합의 재협상'을 압박하는 미국에 이란이 핵합의를 일부 어기는 강수를 뒀지만 이날 로하니 대통령의 연설에서 이란의 생명줄인 원유 수출을 전면 봉쇄해 이란 경제를 고사하려는 미국의 최대 압박에 직면한 이란의 절박함도 읽힌다.
로하니 대통령은 "오늘이 핵합의의 종말이 아니다"라며 "핵합의는 중동과 국제사회가 모두 이익을 보는 외교적 해법이며 핵합의 이행을 일부 중단하는 것도 외교적 행위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핵합의가 평화와 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모두가 그 비용을 내야 한다"며 "유럽은 젊은이들이 마약에 중독되지 않고 이민자가 몰려들지 않기 원한다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핵합의를 되돌이켜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유럽에 60일의 최후 협상을 제안했다.
이는 핵합의 26조와 36조에서 정한 위반 시 논의 절차를 지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뜻임과 동시에 핵합의의 틀을 되도록 깨지 않고 유럽과 최소한의 교역을 해보려는 이란의 처지를 반영한다.
미국의 제재 부활로 이란은 물가 폭등, 실업률 상승, 자국화 가치 폭락 등 경제 위기 신호가 명확해지고 있다.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는 8일 낸 성명에서 "유럽이 60일 안에 특히 금융 거래와 원유 수출을 핵합의에 따라 정상화해야 한다"면서 "유럽과 협상이 결렬되면 우라늄을 더 고농도로 농축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란 지도부가 현재 경제적 이득과 유럽과 교역을 최우선으로 둔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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