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급등·봉쇄 걱정에 일부 생활필수품 사재기
"미국의 부당한 핵합의 탈퇴 탓" 비판 고조…"정부 경제정책도 잘못"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7일(현지시간) 저녁 테헤란 북부의 종교 성지인 이맘 자데 살레 사원(마스지드. 모스크)은 이슬람 금식성월 라마단 첫날을 맞아 저녁 기도를 하려는 시민으로 붐볐다.
무슬림에게 라마단은 어려운 이웃에 자비를 베풀고 종교적 절제를 실행하는 성스러운 기간이지만 이란 국민은 올해 라마단을 무거운 마음으로 맞이했다.
라마단 하루 전인 6일 미국 정부가 이란을 겨냥해 항공모함 전단과 폭격기를 중동에 배치하겠다고 압박하면서 '전쟁 공포'가 이란 국민 사이에서 감도는 탓이다.
이맘 자데 살레 사원에 기도하러 나온 레자 모르타자비(44)씨는 "이란과 미국이 전쟁하면 세계 대전이나 마찬가지여서 설마 실제 전쟁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라면서도 "80년대 이라크와 전쟁 이후 미국이 이렇게 군사적으로 위협한 적이 없어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털어놨다.
가족과 함께 사원에서 무료로 나누는 에프타르(라마단에 금식을 마치고 일몰 뒤 먹는 첫 식사. 아랍어 이프타르)를 먹으러 왔다는 알리 에스판디아리(33)씨도 "미국이 이란을 직접 거론하면서 전쟁 분위기를 높였다"라며 "미국이 이란을 괴롭히려고 작정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달 2일 미국이 이란의 원유수출을 전면적으로 제재하고 군사적 압박이 표면으로 드러나자 이란 현지에서 실제 동요하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이란 정부는 미국의 부당한 압력을 극복할 수 있다고 했으나 8일 달러화 대비 이란 리알화의 시장 거래 환율은 미국이 2단계 제재를 복원한 지난해 11월 이후 최고치까지 올랐다.
미국의 압박은 부당하지만 이란 국민이 직면한 생활고는 더욱 심각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테헤란의 슈퍼마켓에서 만난 주부 한나 하비아니(50)씨는 "생활필수품과 식료품 가격이 배 이상 올랐다"라며 "저장할 수 있는 설탕 10㎏과 샴푸 10통, 토마토 페이스트 15캔을 한꺼번에 샀다"고 말했다.
미국이 1단계 제재를 되살린 지난해 8월 한때 화장지, 치약과 같은 위생용품 일부가 사재기로 부족했다가 어느 정도 정상을 회복했다.
하지만 미국이 이란산 원유 수입 제재의 예외를 중단하고 항모 전단 배치를 발표하면서 다시 생활필수품과 버터, 통조림, 육류, 식용유 등 식료품 사재기가 시작되는 분위기다.
하비아니 씨는 "소문에는 정부가 비상사태를 대비해 생필품을 충분히 저장해 놓고 이를 풀지 않아 물가가 오른다고 한다"라면서 "정부의 물가 관리가 실패하면 큰 혼란이 벌어질 것이다"라고 걱정했다.
미국의 압박이 거셀수록 미국과 협상해야 한다는 여론은 작아지고 있다.
7일 테헤란 타즈리시 시장에서 만난 마무드 아슬라니(32) 씨는 "이란은 바즈람(핵합의의 이란어 약자)을 다 지켰는데 미국은 아무 근거없이 핵무기를 의심하면서 이란을 구석으로 몬다"라며 "미국과 협상은 이에 굴복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말이 협상이지 미국이 이란에 요구하는 것은 완전 무장해제다"라며 "지금에 와서 미국과 협상은 의미가 없고 협상이 이뤄졌다고 해도 언제든지 그들은 이를 파기할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이 시장에서 채소를 파는 모하마드 레자 샤리피(51) 씨도 "미국이 원하는 대로 응하면 이란은 이라크나 시리아처럼 될 것이다"라며 "바즈람을 지키겠다는 유럽과 협상해 원유를 계속 수출하는 길을 마련하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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