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광주고려인마을 대표 "고려인들은 한국에 정착하고 싶다"

입력 2019-05-09 14:53  

[인터뷰]광주고려인마을 대표 "고려인들은 한국에 정착하고 싶다"
"100년이상 중앙아를 떠돌면서도 성(姓)씨를 지켜온 독립운동가의 후손"
신조야 대표…20여년간 고려인 한국 정착에 헌신



(서울=연합뉴스) 김종량 기자 = "고려인 동포는 단순한 외국인이나 다문화 이주민이 아니라 국가가 돌봐야 하는 소중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다. 한국은 자랑스러운 할아버지·할머니의 나라다. 고려인이 한국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20여년간 고려인의 한국 정착에 앞장서온 광주고려인마을 신조야 대표(62)는 9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고려인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 아니라 조상의 땅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왔다"며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고려인 3세인 그는 2001년 국제결혼을 통해 광주광역시에 살던 딸을 만나러 왔다가 광산구 월곡동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초창기 정부 지원도 없고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것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과거 중앙아시아 황무지를 개척하면서 살았듯이 묵묵히 삶을 개척했다.
"'민주화의 성지' 광주가 너무 좋아 정착하게 됐습니다. 이웃들 인심도 훈훈하고요. 이후 뜻이 맞는 고려인들이 한두 명 모여 이웃이 되었고 결국 마을이 만들어졌습니다. 2005년에는 광주고려인마을 공동체를 설립했습니다. 지금은 4천500여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다"고 기뻐했다.
그는 고려인 선조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잊힌 고려인의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마을 이름도 '고려인마을'로 지었다.


이 마을에는 현재 월곡2동사무소, 파출소, 초등학교,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 청소년문화센터, 지역아동센터, 보건 진료소, 법률지원단, 미디어센터, 인문사회연구소, 협동조합 등이 들어서 있다.
동(洞) 규모로 성장하기까지에는 어려움도 많았다고 한다. '고려인의 어머니'로 불리는 그는 동네 궂은일을 도맡아 했고, 고려인의 임금체불과 동네 각종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발이 부르트도록 기업과 관공서를 찾아다녔다.
"고려인은 한국말이 서툰 데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일부 업체는 이러한 약점을 이용해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고려인 동포를 동남아 외국인 근로자 취급을 했다"고 하소연했다.
그래서 그는 한국어 교육과 고려인 동포지원을 위한 특별법 개정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5월 법무부가 주최한 '제11회 세계인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올 초에는 재외동포신문이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정부의 지원은 여전히 소극적이다. 그래서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지난 3월에는 광주시청 로비에서 '연해주 독립운동 전시회'를 연 데 이어 고려인의 삶과 선조들의 독립운동사, 한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자료와 사진 등을 한데 모은 '고려인의 삶과 모국어'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또 고려인 후손들의 광주 정착과정을 소개한 4분 52초 분량의 홍보영상을 만들었고, 광주고려인마을에 있는 광산구 월곡2동사무소 2층에 홍범도·김경천 장군 등 고려인 선조들의 항일운동 관련 사진과 서적, 육필원고 등을 전시한 '고려인 항일투쟁 역사유물전시관'을 개관하기도 했다.

그의 소원은 '고려인의 한국정착'에 모여 있다.
"고려인은 독립운동가 후손이지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외국인 근로자만도 못한 처우를 받고 있다. 고려인동포 4~5세대 자녀들이 국내에서 출생했는데도 관련 법이 개정되지 않아 언제 추방될지 모른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
신 대표는 정부와 국민에게도 한마디 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정부가 돌봐주지 않으면 누가 나라를 위해 희생하겠는가. 고려인은 배척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손잡고 가야 할 한국 사람이다. 우리는 100년 이상 중앙아시아에서 떠돌아 살면서도 한국 성(姓)씨를 지켜온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다"


그는 고려인 자녀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한국은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할머니의 나라다. 비록 지금은 외국인 신분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대한민국의 동포로서, 국민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열심히 준비하라. 그리고 독립운동가의 후손임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jr@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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