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in제주] 제주 상징 노루 관리 '총체적 부실'…"사슴 멸종 전철 피해야"

입력 2019-05-10 07:00  

[줌in제주] 제주 상징 노루 관리 '총체적 부실'…"사슴 멸종 전철 피해야"
2009년 1만2천800마리서 지난해 3천800마리로 70.3% 감소
"최근 6년간 7천여마리 포획했지만 농작물 피해는 줄지 않았다"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제주를 상징하는 동물을 하나만 꼽아보라면 십중팔구 사슴과 노루를 말한다. 이유를 떠올려 보면 이미 오래 전 제주에서 멸종한 사슴은 여전히 사람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고, 노루는 산록도로 뿐만 아니라 중산간의 오름, 한라산에서 어렵지 않게 그 새침하고, 귀여운 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 멸종된 제주도의 상징 '사슴'이 위기 맞은 '노루'에게
사실 제주를 상징하는 동물의 '원조'는 노루가 아니라 사슴이었다. 한라산 꼭대기 분화구의 이름이 백록담(白鹿潭)인 것만 봐도 그렇다. 백록담의 이름은 선인들이 이곳에서 '백록(흰사슴)'으로 담근 술을 마셨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지금 바닷가에 둘러 있는 산과 제주 지방에는 사슴이 많이 있는데, 다 잡아도 이듬해가 되면 여전히 번식하니 바다의 물고기가 변해서 사슴이 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고 기록해 당시 사슴이 한라산에 많이 서식하고 있었던 것을 미뤄 볼 수 있게 한다.
제주에서 사슴이 살기 시작한 때는 선사시대로 추정된다. 어음리 빌레못동굴에선 붉은 사슴의 뼈가 나왔고, 신석기시대 유물 가운데는 사슴의 뿔이나 뼈로 만든 도구도 나왔다.
사슴은 장수를 상징하는 영물 대접을 받았던 동시에 인간에겐 탐욕의 대상이 됐다. 사슴은 가죽, 고기, 뿔 모두 가치가 높아 임금에게 바쳐지는 주요 진상품이었다.



1702년 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로 부임한 이형상이 화공 김남길에게 그리게 했다는 화첩 '탐라순력도' 가운데 '교래대렵'은 당시 이뤄진 대규모 사냥의 모습이 담겨 있다.
교래대렵엔 삼읍 수령과 감목관을 비롯해 마군(기병), 보졸(보병), 포수 등 720명이 깃발을 들고 사냥에 나서 사슴 177마리를 잡았다고 기록돼 있다.
결국 제주에서 사슴은 인간과의 생존 경쟁에서 점차 쇠퇴하다 한 문헌에 따르면 1915년 한 일본인의 사냥을 끝으로 멸종했다.

◇ 상징 자리 물려받은 제주 '노루'의 슬픈 오늘


제주의 상징 동물 사슴은 그렇게 사라졌고, 지금은 사슴과의 노루가 그 지위를 자연스럽게 승계받았다.
사슴과 함께 조선시대 주요 진상품으로 사냥의 대상이었음에도 살아남은 제주의 노루들에게 있어 가장 큰 시련의 시기는 아마도 최근 6년간임이 틀림 없겠다.
제주도는 2013년 7월 노루를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해 총기나 올무로 포획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근거는 '제주특별자치도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 조례'였다. 당시 조례안을 발의한 구성지 전 제주도의회 의장은 "농민들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노루와 인간의 공존은 말이 안된다"며 노루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막아달라는 농민들의 편에 섰다. 실제로 노루들이 중산간에 내려와 당근, 콩 등을 먹어치우면서 피해를 호소하는 농민들이 많았다.
포획이 허가되자 2009년 1만2천800마리로 추정됐던 노루 개체 수는 2015년 8천여 마리, 2016년 6천200마리, 2017년 5천700마리로 줄었다.
지난해에는 노루 개체 수가 3천800여 마리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됐다.


2013년 7월 이후 지난해까지 포획된 노루는 7천32마리, 차량과의 충돌 사고로 죽은 노루도 2천400여마리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한라산국립공원의 경우 2004년부터 2008년까지 1만㎡ 당 1천200여 마리 수준으로 서식밀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됐으나, 2015년엔 580여 마리로 크게 줄었고, 지난해엔 400여 마리로 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는 조릿대가 한라산 국립공원 전역을 덮게 되면서 서식 환경을 해친 데다 조릿대 밀생 지역에서는 하층 식생이 발달하지 못해 노루의 먹이활동이 어려워진 것으로 분석했다.
제주도는 노루의 적정 개체 수로 판단한 6천100여 마리보다 개체 수가 2천300여 마리 적게 파악되자 당분간 유해 야생동물 지정을 해제하고 포획을 하지 않으면서 개체 수 변화를 살펴보기로 이달 8일 결정했다.
도는 최근 6년간 노루의 개체수가 크게 감소했음에도 농작물 피해가 줄어들지 않은 점에 주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노루로 인한 농작물 피해 보상을 받은 농가는 2013년 369농가(5억600만원), 2014년 263농가(3억690만원), 2015년 275농가(2억5천500만원), 2016년 171농가(2억9천400만원), 2017년 198농가(3억2천200만원), 2018년 281농가(3억8천700만원)로 노루 포획 허용의 효과가 있었다고 추정할 근거는 찾기 힘들었다.
도 관계자는 8일 "노루 보호와 적정 개체 수 유지를 위한 조사를 하고 기후변화 및 생물상 변화에 따른 개체 수를 재산정해 앞으로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다.
제주도는 1년간의 노루 유해 야생동물 지정해제에 따라 농가 피해 보상금과 피해 예방시설 지원을 확대하고, 로드킬 방지를 위한 시설을 산간도로 등에 설치할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 환경단체는 노루 포획 중단에 일제히 '환영'


8일 제주도의 발표에 제주환경운동연합은 "무분별한 포획행위로 멸종을 향해 치닫던 노루 포획 문제 해결에 문이 열렸다"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환경운동연합은 "노루 유해야생동물 지정을 1년간 해제한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농가 피해보상 현실화와 농지피해방지시설 개선·지원을 통해 노루와 농가가 공생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 노루 유해 야생동물 지정을 영구적으로 해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제주도의 적정개체수 산정은 오랜 연구와 과학적방법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며, 생물다양성의 보전 관점에서도 불필요한 일이라며 적정개체수를 정해 포획하는 행위를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제주 노루는 생물다양성 관점에서 반드시 보호관리가 필요한 야생동물"이라며 "유해동물 지정을 완전 해제하고 제대로 된 연구를 통해 보전관리방안을 새롭게 정립, 노루와 인간이 공존하는 제주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신뢰도 의심 사는 제주도의 노루 개체수 조사 결과


2013년 이후 제주도가 발표한 노루 개체수 조사 결과의 신뢰도에 대한 문제 제기도 많이 나오는 실정이다.
노루 개체수 조사와 행동 특성 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 기관은 도 산하기관인 세계유산본부다.
2016년 세계유산본부는 전수조사가 아닌 샘플링 기법으로 열화상 카메라를 장착한 유인헬기 촬영과 인력 동원 조사를 통해 개체수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적정 서식 개체수를 6천110마리로 분석했다.
당시 세계유산본부는 노루의 1일 소비량(건조중량)과 산림유형별 먹이식물의 연간 건조 생물량을 비교분석 산출해 적정 서식 밀도를 파악,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적정 서식 개체수를 발표하며 앞으로 노루 개체수가 효율적으로 관리될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유산본부의 장밋빛 전망은 3년도 채 지나지 않아 개체수가 3천800여마리로 떨어지며 '멸종 위기' 논란이 불거지자 신뢰를 잃게 됐다.
도내 야생동물 전문가들은 노루를 전담하는 세계유산본부 내 연구 인력이 박사급 전문 계약직 공무원 1명 밖에 없다는 점에서 조사연구 결과의 신뢰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정확한 노루 개체수 조사를 위해서는 같은 날 도 전역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한 촬영의 한계도 지적했다. 조사에 사용된 열화상 카메라의 성능으로는 초지가 아닌 숲 속에 있는 노루들의 숫자까진 헤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편 노루의 행동 특성에 대한 연구는 거의 걸음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별로 서식하는 노루에 대한 위치추적기 부착과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행동 특성 연구에 필수적임에도 세계유산본부는 지금까지 단 몇 마리를 대상으로만 위치추적기 부착 연구를 진행했다.

◇ '사슴 멸종'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환경보호단체와 야생동물 전문가들은 제주도의 노루 개체수 관리 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무엇보다 정확한 개체수 조사와 적정 개체수 산정을 위한 전문 인력 충원이 시급하며, 이와 함께 노루가 실제로 농작물에 얼마나 피해를 주는지에 대한 조사도 이뤄져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노루 포획이 허용된 지난 6년간 농작물 피해 규모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는 게 근거다.
이들은 또 '사살' 위주의 포획 정책을 위해 투입되는 예산이 적지 않은 만큼 통발 등을 이용한 비사살 포획을 통한 관광자원화 등도 검토해야한다고 했다.
강창완 제주야생동물연구센터 이사는 "제주도가 노루 연구·조사를 위한 전문 인력 추가 확보와 조직 구성에 당장 나서지 않는다면 주먹구구식 땜질 처방만 계속돼 노루 역시 사슴처럼 멸종의 전철을 밟게 될 지 모를 일"이라고 경고했다.
jihopar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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