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철 신작 장편소설 '독의 꽃'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삶의 의미는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에 있어. 기쁨은 두려움에 대면할 수 있도록 삶이 제공하는 몇 움큼의 에너지일 뿐이지."
소설 '독의 꽃'(작가정신)에서 두려움은 독(毒)이고 기쁨은 약(藥)으로 상징된다. 독은 '일상의 마비'이면서 '각성'을 불러오는 약이기도 한 이중성도 있다.
우리는 평생 두려움을 접하고 극복해야 하지만 사실 인생에서 기쁘고 즐거운 순간은 많지 않다. 고통과 외로움, 절망, 무력감, 불안감과 같은 독에 신음하는 시간이 인생의 대부분이다. 오히려 삶이 기쁨만 연속된다면 우리는 기쁨이 어떤 감정인지 망각하고 더 큰 쾌락을 찾아 자신을 소모할 수밖에 없다. 마치 더 강한 마약을 찾아다니는 중독자들처럼.
소설은 이처럼 '독'이 '나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으며, 없어서도 안 될 요소라는 점을 강조한다. 독을 해독하려면 약이 필요하지만, 독 자체가 약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주인공 '나'는 말한다. "삶이라는 책 한 장 한 장에는 독이 묻어 있어. 네가 손가락에 침을 발라 책장을 모두 넘기고 나면, 그로 인해 중독되고 탈진하여 죽음에 이르게 돼. 그러나 너는 그때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지."
'나'는 또 이렇게 강조한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독의 꽃이야."
과도한 독은 한순간 인명을 앗아갈 수 있으나 미량의 독은 활력소가 될 수 있다. 최고수 복 요리사가 절대 미각을 만족시키고자 복어회와 복어탕에 미량의 복어 독을 타는 것과 같다.
작가는 그래서 독의 이중성을 이렇게 표현한다. "독은 그에게 있어서 인생의 각 순간을 뭔가 열정적인 것으로 증폭시키는 힘인 동시에, 생명의 촛불을 한순간에 훅 불어 꺼버릴 수 있는 냉혹한 바람이었다."
독과 약은 이항 대립의 관계이지만 결국 상통한다고 소설은 말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세계는 선-악, 성-속, 생-사, 현실-이상의 대립 구조이지만 인간은 독과 약을 동시에 품은 존재라는 것이다.
소설 '독의 꽃'은 인간 본성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데 천착해온 최수철이 5년 만에 내놓은 장편이다.
몸속에 독을 지니고 태어난 '조몽구'가 그 독을 점점 키우다 독과 약을 동시에 품고 사멸하는 이야기를, 화자인 '나'가 들려주는 구조를 지녔다. '나' 역시 독에 중독돼 조몽구와 한 병원에 입원하고 그를 지켜보며 자아의 본질을 찾아간다.
조몽구는 두통이라는 '독'과 더불어 살아왔고 어른이 되면서 '술', '섹스', '군대 시스템', '위선과 그릇된 신념', 편협하고 진부한 사상'에 이르기까지 우리 정신을 잠식하는 온갖 독들과 싸운다. 이 유무형의 독들을 제어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독에 대항하는 특이 항체와 면역 체계를 갖게 된다. 그 안에서 '독'이 '약'으로 승화한 것이다.
우리가 본성과 삶의 의미를 찾고 절망에서 벗어나 희망을 찾으려면 독을 지니고 태어난 태생적 한계를 깨닫고 이를 본질적으로 해독하려는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작가는 작품 내내 강조한다.
작가는 독과 해독법, 독살 방법 등에 대한 상당한 전문 지식을 곳곳에 깔아놓아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각종 상징체계와 심리주의 기법, 추리 기법 등을 동원한 양식 실험을 시도한다.
다만 리얼리티 확보를 위해 썼다는 표현 중 '프토마인 균'은 각종 전문사전에서 세균 자체가 아니라 육류가 세균에 의해 부패하며 뿜어나오는 유독성 분해물 '프토마인'으로 설명된다. 프토마인(Ptomaine)은 세균이 아니라 '사독(死毒)'으로 번역된다.
최수철은 작가의 말에서 이미 10여년 전부터 '독'에 대한 작품을 구상해왔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해 봄 말벌에 쏘여 아나필락시스 쇼크를 겪고 죽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듯하다.
그는 또 이 소설 제목을 붙일 때 보들레르 시집 '악의 꽃'(Les Fleurs du mal)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하나하나야말로 곧 한 송이 '독의 꽃'이라는 의미를 가진다"라며 "살아있는 매 순간 스스로의 생존을 위하여 외부의 적대적인 힘으로부터 자신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한편 다른 생명체를 공격적으로 섭취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들 하나하나야말로 곧 한 송이 '독의 꽃'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198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최수철은 1993년 중편 '얼음의 도가니'로 이상문학상을 받으며 한국적 누보로망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윤동주문학상, 김유정문학상, 김준성문학상 등도 받았다. 547쪽. 1만5천원.
lesli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