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에 DMZ 잔해로 탑 세운 이불 "분단 넘어 근대와 이별"

입력 2019-05-10 08:06   수정 2019-05-10 08:12

베네치아에 DMZ 잔해로 탑 세운 이불 "분단 넘어 근대와 이별"
아르세날레에 4m 높이 날개탑…"20년 만에 오니 로맨틱한 감회"



(베네치아=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베네치아에 20년 만에 다시 오니, 로맨틱한 감회에 젖습니다. 작업을 설치하다가 하랄트 제만과 많은 이야기를 하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 저는 젊은 작가였고, 그는 위대한 큐레이터였고요."
9일(현지시간) 2019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가 열리는 아르세날레에서 미술가 이불(55)은 20년 전을 떠올렸다.
이불은 1999년 제만이 총감독을 맡은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했다. 노상균과 함께 한국관 대표작가로도 나서 특별상을 받았다. 베네치아는 당시 이미 국제 미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젊은 작가에게 또 하나의 날개를 달아줬다.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가로 성장한 이불은 20년 만에 베네치아 무대를 다시 밟았다. 그는 랠프 루고프 영국 헤이워드갤러리 관장이 총괄한 본전시에 78명(팀) 작가와 함께 참가했다.
9일(현지시간) 옛 조선소 건물인 아르세날레에서 베일을 벗은 이불 작업은 '오바드V'. 높이 4m 구조물로, 3층 탑마다 7개씩 날개가 달린 형태다. 냉전의 아이콘이자 남북 분단을 상징하는 유산인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 철거 과정에서 나온 철 600kg을 녹여 만들었다.



오바드(Aubade)는 밤새 사랑을 나눈 뒤 이별하는 연인을 위한 새벽 노래로, 작가는 다양한 맥락의 '오바드' 연작을 선보여 왔다. 이번 작업에서는 한반도 정세변화 속에서 철거된 DMZ 잔해라는 재료의 특수성이 두드러진다.
이불은 "분단 이유는 이데올로기 대립이며, 이데올로기는 근대를 상징한다"라면서 "작품은 분단에 이별을 고하는 노래가 아니라, 이데올로기(근대)를 넘어서려 하는 움직임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탑 구조와 형상 등에 근대 건축가들이 꿈꾸고 제안한 아이디어를 반영한 것도 그와 연결된다.
작가는 층마다 설치된 다양한 조명 기호를 두고서는 "세상의 많은 물음에 '그렇다'라고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눈길을 잡아끄는 다양한 작품이 빼곡하게 들어찬 아르세날레에서 '오바드V' 존재감은 생각보다 덜했다. 이불은 생각보다 작은 규모를 지적하자 "어려운 주제로 스펙터클한 기념비를 만들기보다는 주제에 어떻게 진지하게 접근할 것인가를 고민했다"라면서 "규모라는 것은 자기가 표현하려고 하는 힘을 적절하게 담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불은 지난해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루고프 총감독과의 연이은 협업에 11일 발표되는 시상식에서 이불이 호명될 것으로 조심스럽게 점치는 이들도 있다. 이불은 특별한 인연은 아님을 강조하면서 "설치하느라 일주일도 넘게 머물렀기에 내일 (베네치아를) 떠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르세날레뿐 아니라 다수 국가관이 포진한 자르디니 이탈리아관에도 이불의 또 다른 작업 2점을 만난다.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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