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화의 다양성 확대 기여…우리 국민의 자긍심 획득"
(도쿄=연합뉴스) 이웅 기자 = "일본 내 혐한(嫌韓) 분위기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실제 와서 보니 한국에서 걱정하는 만큼은 아닙니다."
황성운 주일한국문화원장은 "혐한 세력이 있지만 일부일 뿐이고 일반인들에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고 전했다.
특히 일본 젊은 층은 한국 문화에 대해 편견 없이 긍정적으로 반응한다고 했다.
"일본에서 한류가 새롭게 붐을 이루고 있는 걸 체감하고 있습니다. 작년 주일한국문화원에서 개최한 한일축제한마당에는 8만2천명이 참여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부임 직후 주말에 한인타운인 신오쿠보(新大久保)에 들렀는데 K팝 관련 상품을 파는 가게와 한국 식당에 엄청난 사람이 몰려 있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9일 저녁 개원 40주년을 맞은 '한국문화원 1호' 주일한국문화원의 특별기획전시 '2019 한국 공예의 법고창신-수묵의 독백' 개막식에서 만난 황 원장은 짙은 남색 한복 차림에 상기된 표정으로 분주하게 손님을 맞았다.
1979년 5월 10일 도쿄 도시마구 이케부쿠로 선샤인 60빌딩에 처음 문을 연 주일한국문화원은 현재 27개국 32곳에서 운영 중인 재외 한국문화원의 맏형으로 40년간 한일 문화교류의 거점 역할을 했다. 2009년 전시·공연장을 갖춘 도쿄 신주쿠의 지금 청사에 새로 둥지를 틀었다.
황 원장은 문화체육관광부 대변인으로 일하다 작년 10월 도쿄 문화원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후 한일관계가 경색되면서 식었던 한류 열풍이 최근 일본 10대를 중심으로 되살아나고 있다는 여러 기관의 보고서 내용을 재확인해줬다.
지난해 코트라(KOTRA) 보고서는 2017년부터 일본 내 '제3차 한류'가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올 4월 발간한 '2018 한류백서'도 최근 일본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국식 메이크업, 패션 등이 인기를 누리는 신한류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전했다.
황 원장은 "한류는 서양의 문화우월주의를 넘어서 인류문화의 다양성 확대에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국민 입장에서 바라볼 때는 자긍심의 획득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한류 확산을 통해 우리 국민이 우리나라,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다음은 황성원 원장과의 일문일답.
-- '한국문화원 1호'인 도쿄문화원 개원 40주년이자, 재외 한국문화원 출범 40주년이다. 감회가 남다를 듯하다.
▲ 40년 전 이케부쿠로 선샤인 시티빌딩 일부를 빌려 개원했는데 그동안 한국 문화 소개와 한일 문화교류의 거점 역할을 충실히 해 왔다고 자부한다. 새 청사를 마련한 이후 코리아센터로 거듭나면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한국문화원의 맏형으로서 한층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부담에 어깨가 무겁다.
-- 재외 한국문화원과 우리나라 해외 문화교류의 40년 역사를 개괄적으로 평가한다면.
▲ 한국문화원은 한국 전통문화와 예술을 해외에 소개하기 위해 설립됐다. 2010년 이후 많이 개설돼 이제는 32개소에 이른다. 그간 한국 문화를 세계에 홍보하는 거점 역할을 해왔으며 한류가 확산하는 데에도 일조해 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제는 한국어와 전통문화뿐만 아니라 영화, 한식, 게임,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전 세계에 확산하는 노력을 하고 상호 문화교류도 적극 지원한다.
-- 방탄소년단(BTS)을 필두로 한 K팝의 인기, 한류의 확산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다.
▲ 일본에서도 한류가 새롭게 붐을 이루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작년 주일한국문화원에서 개최한 한일축제한마당에는 8만2천명이 참여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부임 직후 주말에 한인타운인 신오쿠보(新大久保)에 들렀는데 K팝 관련 상품을 파는 가게와 한국 식당에 엄청난 사람이 몰려 있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
K팝 그룹의 일본에서의 인기는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걸그룹 트와이스는 NHK 홍백가합전에 2년 연속으로 출연하고, 올해 3월과 4월에 열린 도쿄, 오사카, 나고야 공연에 22만 관객을 동원했다.
작년 연말부터 올 초까지 38만석 규모의 일본 돔 투어를 성공적으로 진행한 BTS는 오는 7월에도 일본 공연을 예정하고 있다. 작년에 아레나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블랙핑크도 올 연말과 내년 초에 20만명 규모의 돔 투어를 기획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 그룹들이 앨범을 발매할 경우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하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 됐다.
드라마, 게임 등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도 일본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에는 문학 한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 작가의 작품들이 일본에서 많이 읽힌다.
-- 한류 확산에 재외 한국문화원들의 역할은.
▲ 큰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한국어 강좌, K팝·영화 관련 행사 등을 통해 한류 팬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한국 문화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기회를 제공해 왔다. 저 자신이 2011년 필리핀 한국문화원을 처음으로 설립한 경험이 있는데, 막 한류 붐이 생기기 시작한 필리핀에 한글 강좌를 비롯해 한식, 한국무용, 댄스, K팝 프로그램을 운영해 한류 확산에 일조한 추억이 있다. 한국 문화에 대한 정보와 경험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보람을 느꼈다.
-- '한류' 확산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나.
▲ 한류는 서양의 문화우월주의를 넘어서 인류문화의 다양성 확대에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국민 입장에서 바라볼 때는 자긍심의 획득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한류 확산을 통해 우리 국민들이 우리나라,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됐다. 외국 문화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고 우리 문화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고 한국 문화에 대해 긍지를 갖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한류가 우리 국민에게 가져다준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 지속적인 한류 확산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나.
▲ 양질의 문화콘텐츠를 생산·유통하는 콘텐츠 산업의 기반 조성을 위해 범정부적인 지원이 지속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 문화의 일방적 소개를 넘어서 상호 문화 이해를 기반으로 한 쌍방향 문화교류를 더욱 많이 해야 한다. 직접적인 교류뿐 아니라 공동 창작, 제작 등 다양한 형태의 쌍방향 문화교류가 활성화되도록 민간과 정부가 힘을 합쳐야 한다.
-- 민간이 주도하는 한류가 해외 문화교류를 이끄는 지금 재외 한국문화원들의 바람직한 역할은.
▲ 민간의 역할을 뒤에서 지원해주면서 민간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류 팬들이 만나고 뛰어놀 기회를 제공하면서도 전통문화에서부터 한국문학, 전시 등 좀 더 다양한 한국 문화를 소개함으로써 한류 팬에서 한국 문화의 팬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 한류 확산과 더불어 혐한류, 반한류 기류도 커지고 있는 것으로 인다.
▲ 작년부터 징용공 판결, 위안부 재단 해산, 레이다 갈등 등으로 정치적인 대립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동안은 일본 언론에서 한국 측을 비난하는 기사를 보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한국 대사관 앞에서 정기적으로 시위를 하는 우익 그룹들도 있다. 그렇지만 정치적 갈등과 문화·인적 교류는 별개로 문제로 생각하고 있는 일본인들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양국의 정치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K팝 가수들의 공연들이 성황리에 이뤄지고, 양국 간의 인적교류도 작년 말 1천만명을 넘어 올해도 늘어나는 것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 한일관계 개선에 문화교류의 역할이 클 듯하다.
▲ 양국 국민이 서로 접하고 직접 교류할 기회를 보다 많이 만들어서 서로 간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직접 만나보고 겪어보고 해서 상호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때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고 본다.
한일 교류의 미담 사례를 확산해 정치 갈등에 기인한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수림문화재단과 공동으로 한일 교류에 이바지한 인사들의 미담을 발굴해 소개하는 책을 발간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서로 돕는 훈훈한 이야기들이 널리 퍼져서 더욱더 아름다운 이야기를 낳는 선순환을 가져왔으면 한다.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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