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세상] 스승의날 "우린 감사하지 않아요" 편지 쓴 학생들

입력 2019-05-11 06:00  

[SNS 세상] 스승의날 "우린 감사하지 않아요" 편지 쓴 학생들
청소년단체 '스쿨미투' 1년 맞아 고발 캠페인

(서울=연합뉴스) 이세연 인턴기자 = "대학 시절 밥 사달라는 여자 후배에게 '열 달 동안 배부르게 해줄까?'라고 말한 걸 자랑스럽게 얘기해주신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 그때는 멋모르고 웃었지만, 지금은 그 말에 웃은 제가 소름 끼칩니다. 덕분에 스승의날마다 그 말을 곱씹으며 보내네요"
교사에게 감사를 전하는 스승의날(5월15일)을 앞두고 자신의 은사에게 '감사하지 않다'는 이들이 편지를 썼다. 학교 내 성폭력·성희롱을 폭로하는 '스쿨 미투(#me too)' 운동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교육 현장을 고발하기 위해서다.
학교 성폭력 근절 운동을 벌이는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은 지난달 24일부터 '우리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편지쓰기 캠페인을 벌였다.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은 "폭력을 행사하거나 성희롱을 일삼는 스승은 더는 존경할 수 없다는 것을 전하고자 한다"고 편지쓰기 캠페인을 벌인 이유를 설명했다.
이 단체는 성희롱 발언 등 성폭력을 저지른 교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쓸 수 있는 편지 양식을 만들어 SNS를 통해 전파했다. 현재 학교에 다니거나 학교를 졸업한 25명의 참가자가 경험했던 스쿨 미투 상황을 가해 교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써 보냈다.
'은사가 감사하지 않은 이유'로는 혐오 발언, 성희롱 등 언어적 폭력 때문이라는 답변이 19건으로 가장 높았고, 성별에 따른 차별 대우와 신체적 폭력이 각각 16건, 13건(중복 답변 허용)으로 뒤를 이었다. 동성애자임을 밝히라고 강요당했다는 고발도 있었다.
다음은 이 단체가 캠페인을 통해 수집해 연합뉴스에 공개한 편지 내용의 일부.
"쌤, 집에 데려다준다고 차 태워준 건 고마운데 거기서 제 허벅지를 만진 건 하나도 안 고마워요. 당신이 교사라서 제가 참 걱정이 많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점심시간마다 남학생들을 모두 내보내고 열 명 남짓한 여학생들만 교실에 남긴 채 무릎에 앉히거나 뒤에서 끌어안던 선생님의 모습이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지금까지도 너무 선명합니다. 김00 선생님, 저는 선생님께 단 하루도 감사할 수 없었습니다"
"남고를 다녔던 저는 참 많은 폭력을 경험했습니다. 몸 상태가 안 좋은 저에게 남자가 약한 척한다며 수업에 강제로 참여하게 했고, 야간 자율학습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때리거나 성기를 만지는 등 심한 처벌을 받기도 했습니다. 여성 교사에 대한 성적 대상화는 일상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여러 문제를 가진 교사들과 함께 지내왔네요. 행복하지 마세요, 선생님들"
"수업시간에 '동성애자가 아니면 손들어보라'고 말한 선생님! 저는 당신이 꼭 은퇴하기 전에 잘리는 날이 오길 기다립니다"
"여학생에게 짧은 치마를 입지 말라고 이야기할 때 '난 좋지만 너희는 손해다'라던 상담 선생님. 아직도 후배들을 성희롱하고 계시나요?"
캠페인에서 모인 편지는 11일 오후 2시 합정동 다이닝 카페 '담다'에서 열리는 '그것은 교권이 아니다 스쿨 미투 토크콘서트'에 전시된다.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이 주최하는 이 행사에서는 스쿨 미투 1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학교와 교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토론한다.

지난해 4월 서울 노원구 용화여고 학생들이 교사들의 성폭력을 폭로하면서 본격화된 스쿨 미투 운동으로 지금까지 78곳의 중·고등학교에서 교사의 성폭력에 대한 폭로가 나왔다.
그러나 가해자로 지목돼 수사를 받은 교사 상당수가 불기소 처분을 받아 복귀하는 등 정부의 스쿨 미투 대책이 학생들이 요구한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며 여성계와 학생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sey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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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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