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내용은 물론 패스트트랙 지정도 반대…"민주주의 절차에 반해"
입장발표 순수성 두고 논란…학회 쪽 "고위급 판·검사는 관여 안 해"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법원행정처와 대검찰청 고위간부가 부회장으로 활동하는 한국형사소송법학회가 검·경 수사권조정 법안 및 선거제 관련 법안 등을 국회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한 데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학회에는 법원과 검찰의 현직 간부들도 몸담고 있어 입장발표의 순수성을 두고 논란 소지를 남겼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는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패스트트랙 지정) 입법 과정은 그 절차와 내용에 있어 우리의 소망과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국민과 국가의 앞날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떨칠 수 없다"는 입장을 냈다.
이어 "아무런 연관성을 발견할 수 없는 두 분야의 특정 법안을 함께 묶어 패스트트랙으로 가져가는 것은 국가의 근간인 형사사법제도를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정당하지 않은 절차를 통해 마련된 입법은 절차적 정의를 핵심 가치로 하는 민주주의에 반하여 민주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는 여야 4당이 수사권조정 법안 등을 패스트트랙 절차로 입법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는 취지로 여겨진다.
학회는 또 문무일 검찰총장이 수사권조정 법안의 문제점으로 지목한 '경찰의 1차 수사종결권'과 관련해서도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을 방지한다는 수사권조정의 목적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고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므로 받아들여져선 안 된다"고 반대했다.
검찰의 직접수사 축소를 두고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은 단순히 수사 범위를 제한한다고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유보된 직접수사권은 정치적으로 민감할 여지가 많은 사건들이어서 여기에 검찰 수사가 집중되면 수사의 비례성이 약화되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더욱 훼손될 위험이 있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수사권조정 법안의 내용뿐 아니라 국회의 패스트트랙 절차까지 비판 대상으로 삼은 입장을 밝힌 형사소송법학회에는 현직 고위급 판·검사들도 소속돼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형사소송법학회는 형사소송법 학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민간 학술단체이지만, 현직 판·검사들이 대거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특히 현직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과 대검찰청 차장검사 등이 당연직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논평을 두고 민간 학술단체의 순수한 비판 의견이라고 보기 어려운 게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논란 조짐이 일고 있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변호사는 "과거 형사소송법학회는 전·현직 검찰 인사들이 다수 참여해 검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혹을 받았다"며 "검찰총장에 이어 형사소송법학회가 반대입장을 밝힌 것을 순수한 의도로만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학회 측은 법원과 검찰의 입장과는 전혀 무관하게 형사소송법 학자들을 중심으로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해명하고 나섰다.
학회 관계자는 "당연직 부회장인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과 대검찰청 차장검사는 이번 보도자료 작성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며 "정치적 의도가 없는 순수한 학자들의 의견"이라고 해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현직 판·검사인 부회장들은 당연직일 뿐 학회의 의사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며 "부회장인 이승한 사법지원실장과 봉욱 차장검사는 학회의 입장 내용을 몰랐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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