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손님이 작은 영웅들" 승객들 사연 책으로 낸 택시기사

입력 2019-05-12 07:35  

"모든 손님이 작은 영웅들" 승객들 사연 책으로 낸 택시기사
19년 택시운전 문장식씨, 승객과의 대화 엮어 2권째 집필
"돈 많고 잘 나가는 이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보죠"


(서울=연합뉴스) 정래원 기자 = "그녀는 자신이 암 환자로서 6개월도 못 산다는 것도 잊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런 자신의 삶을 택시기사인 나한테 꼭 써달라고 부탁했다. 지금은 어디에 계신지 모르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19년째 택시를 모는 문장식(70)씨는 운전하면서 만난 손님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 2012년 첫 책을 낸 데 이어 지난해 11월 신간을 펴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작가다운 감성이 배어나오는 문씨를 만났다.
그는 12일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택시 손님들이 해주는 얘기들이 시냇가에서 종아리를 스치고 흘러가 버리는 물처럼 잊히는 게 아까웠다"며 집필 동기를 밝혔다.
그의 책에서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다 결국 편의점 사장이 된 청년, 회사에서 승진한 날 아내와 어머니에게 어떻게 소식을 전해야 더 기뻐할지 고민하는 가장, 어버이날을 맞아 평소 대화가 없던 아버지와 처음 단둘이 밥을 먹었다며 쑥스러워하는 아들이 영웅이고 주인공이다.
문씨는 "돈 많고 잘 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희망을 주지 않느냐"며 "어두운 세상을 좀 밝게 하고, 탁한 물에다 맑은 물을 조금 더하는 정도면 충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융회사에서 운전기사로 20여년 간 일하다 외환위기로 회사가 휘청이는 바람에 2000년부터 택시를 몰았다. 손님들이 해주는 이야기를 메모했다가 일기장에 옮겨쓰곤 했는데, 이를 본 지인들이 출판사를 소개해주면서 책까지 내게 됐다.
문씨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움막집과 비닐하우스를 전전하며 유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그는 "열 몇 살이 되도록 한글도 모르니 어느 날 사촌 형님이 초등학교 수학책과 국어책 몇 권을 가져다줬다"며 "그걸 보고 따라 쓰는 게 공부였다"고 말했다.
그렇게 글을 뗀 문씨는 잡지사 펜팔 코너를 통해 문장 연습을 했다고 한다.
"열 몇 살 땐가 막내 여동생 이름으로 글을 한번 썼더니 편지가 엄청 많이 오는 거예요. 받침도 틀리고 엉망인 글인데도 하루에 10∼20통씩 편지가 와. 그걸 제 나름대로 답변을 해주면서 글씨 연습을 했죠."
서툴게 배운 글이다 보니 종종 실수도 한다. 문씨는 "하루는 손님이 책에다가 사인해달라고 해 '생각이 밖이면 인생이 밖인다'라고 써줬다"며 "나중에 다른 손님한테 물어보니 '바뀌다'가 맞더라"며 웃었다.
문씨가 쓴 책은 손님들이 읽을 수 있도록 택시 뒷좌석에 비치돼 있다. 손님들은 책을 읽고 나름의 독후감을 말해주기도 하고, '내 얘기도 써 달라'면서 살아온 얘기를 술술 꺼내놓는다.
아예 자신의 삶을 글로 써주겠다는 손님들도 적지 않다. 이들을 위해 문씨는 방명록을 만들어 두고 응원 메시지나 '사연 제보'를 받는다. 다음 책은 손님들이 쓴 방명록 글을 모아 낼 계획이다. 신간을 낸 지 6개월밖에 안 됐는데, 벌써 새 책을 쓸 만큼 글이 쌓였다.
그는 "배우지 못했기에 손님들과 이야기 도중에 작은 지식을 깨우칠 때 행복하고 황홀하다"며 "나이가 칠십이 넘었지만 내 택시에 타는 손님들은 누구라도 다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on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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