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형상화한 '그랜드마더 타워'·회화 탐구한 '땅 모래 지류' 등 전시
루고프 총감독 초청으로 본전시 첫 참가…"회화란 제가 현재 보는 시점"
(베네치아=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세계 최대 현대미술제인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 무대는 옛 조선소와 무기고 자리인 아르세날레다.
10일(현지시간) 사전에 공개된 아르세날레를 숨 가쁘게 지나던 사람들 발걸음이 일제히 멈췄다. 다양한 높낮이의 철제 구조물이 서 있고, 직조물(화문석)이 그 위에 빨래처럼 널려 있거나 바닥에 놓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나칠 정도로 정돈된 풍경이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는 듯했다.
올해 본전시에 참여한 한국인 작가 세 명 중 한 사람인 강서경(42)의 작업이다.
지난해 스위스 아트바젤 예술상을 받은 강서경은 올해 랠프 루고프가 이끄는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까지 입성하며 유망 작가로 떠올랐다.
작가는 이번에 '그랜드마더 타워'와 '땅 모래 지류' 연작을 선보였다.
'그랜드마더 타워'는 철제 구조물을 탑처럼 쌓고 색실을 칭칭 감은 작업으로, 10여년 전 세상을 떠난 할머니 모습에서 출발했다.
작가는 "남편을 일찍 잃고 여러 아픔이 있었음에도 강인하게 버텨낸 할머니를 떠올리며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아름답게 선 구조물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언뜻 불안해 보이면서도 최소의 균형을 잡는 구조물을 만든 까닭이다.
강서경은 지난해 리버풀비엔날레에서 자신의 작품을 본 루고프 총감독이 이후 서울 작업실로 찾아와 "회화라는 시스템 안에서 끊임없이 확장하는 방식이 신기하고 흥미롭다"는 평가를 했다고 전했다.
강서경 작업이 눈에 띄는 지점은 이처럼 설치 형태를 한 '회화'라는 데 있다.
그는 물감을 칠한 것도, 캔버스에 무엇인가를 그려낸 것도 아닌 구조물을 회화로 칭한다. "회화란 한 사람이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이며, 그 안에서 내가 현재 바라보는 시점"이란 것이 그의 지론이다.
작가는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그는 겸재 정선의 진경(眞景) 산수 배경인 인왕산 일대를 찾아 그림을 그릴 때마다, 영어로 '트루 뷰'(true view)로 표현되는 진경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 '트루'라는 것이 결국은 작가인 내가 지금의 이 사회 안에서 어떠한 관점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 일종의 태도라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작가가 종이와 먹에 갇히지 않고, 현대적인 설치 작업을 '회화'로서 시도한 이유다. 8년째 진행 중인 '그랜드마더 타워'가 사적인 성격이 강하다면, '검은꼬리 꾀꼬리'나 이번 출품작 '땅 모래 지류' 등은 작가가 생각하는 회화 개념을 사각의 공간으로 시각화한 작업이다.
네모 안에 음높이·박자·동작 등을 담은 정간보(井間譜), 춘앵무 독무가 펼쳐지는 강화 화문석 등 우리 전통과 접목한 점이 특히 눈길을 끈다.
이번 본전시에는 서울에서 활동하는 강서경, 이불과 재미동포 아니카 이가 작업을 출품했다. 아니카 이 '바이올라이징 더 머신'은 과학기술을 접목한 작업으로, 독특한 조형성으로 관람객들 사이에 눈길을 끌었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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