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음식 맛을 지키되 현지화하려는 노력 필요"
(도쿄=연합뉴스) 이웅 기자 = "한국 음식은 몸에 맞는 게 많고 동양의 음양오행설에도 맞는 거 같아요."
지난 주말(11일) 도쿄 신주쿠 한인타운 신오쿠보(新大久保)의 '조선옥요리연구원'에서 만난 사스가 기미마사(流石皇甫·62) 씨는 동료인 주부 수강생들에게 스스로 연구해서 알아낸 한국의 장(醬) 만들기 비법을 알려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기계를 다루는 엔지니어로 일하다 은퇴했다는 그는 8년 전부터 한국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8년 전이면 TV 드라마에서 시작된 일본 내 한류가 K팝과 한식 등으로 확산하면서 절정에 달했던 2010년대 초반이다. 지금은 한국 맛집 간판이 즐비한 신오쿠보에 한국 음식점이 급증한 것은 이 무렵이라고 한다.
신오쿠보 골목 유명 한정식집 '대한민국'을 운영하는 박현자(54) 씨는 "2002년 한일월드컵 때 개업을 했는데 당시는 인근에 한국 음식점이 2개밖에 없었고 음식값도 지금보다 2~3배 비쌌다"고 말했다.
그러다 2008~09년 '2차 한류' 때 한국 음식점이 엄청 늘어났다고 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나고 (한류가) 더 꽃을 피웠죠. 당시는 정말 살 맛 나는 세상이 왔구나 했었죠."
하지만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과거사에 대한 일왕 사과 요구 후 일본 내 혐한(嫌韓), 반한(反韓) 여론이 고조되면서 10년간 지속하던 한류가 급격히 식었다.
박 씨는 "당시 (반한) 데모를 어마어마하게 했는데 손님들이 썰물 빠지듯이 싹 빠졌다. 큰 회사들은 한국 식당 영수증을 갖고 오면 결제를 안 해줬다. '대사관', '고려'라는 큰 식당 두 개가 있었는데 그때 문을 닫았다. 우리 가게도 한 달에 적자가 500만원 이상 나서 20년 저축한 걸 다 까먹었다. 자살한 사람도 있었고 이혼한 사람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2012년부터 요리강좌를 개설해 일본인들에게 한국요리를 가르친다는 박 씨는, 혐한 분위기가 극심하던 시절 손님이 없어 가게가 한가해지면서 요리 공부를 하고 강의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랬던 신오쿠보 한인타운 경기가 최근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데 이를 '3차 한류'라 부른다고 했다.
"예전에는 40~50대가 많이 찾아왔는데 지금은 10~20대가 많이 옵니다. 음식도 당시는 비싼 음식이 인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10~20대가 즐기는 길거리 음식이 성업이죠."
신오쿠보에서 요즘 가장 인기 있는 한국 음식은 치즈닭갈비와 치즈핫도그다.
한국요리강좌도 신청자가 넘쳐서 추첨을 해서 수강생을 뽑는다고 했다.
20년째 일본에서 메주를 비롯해 한국의 전통 장 문화를 가르치는 요리연구가 조선옥(52) 원장도 최근 다시 일어난 한류 붐을 타고 한인타운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한국 역사, 문화에 관심이 있는 분 중에 먹는 거에 정착하는 경우가 많아요. 음식에 정착하신 분들은 오래 갑니다. 한국과 일본이 정치적으로 별로 안 좋지만 그분들은 흔들리지 않죠. 맛있는 거 먹으면서 문화를 공유하잖아요. 그런 분들은 한국 사람들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일본인들의 한식에 대한 관심은 TV 드라마, K팝과 같은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에서 파생됐지만, 한식이 도리어 다른 한국 문화에 심취하게 하는 강한 매개물이 된다는 것이다.
조 원장의 나이 많은 수제자인 사스가 씨도 한국 음식을 찾는 일본 젊은 층이 늘어나는 데 대해 "한국 음식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를 배우는 일이서 좋은 현상이라고 본다"며 "음식을 통해 문화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 한국 음식을 알리기 위해선 정부 지원과 함께 현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로 우리 음식문화를 갖고 나가는 데는 현지 사람들의 생각이 중요하죠. 여기는 일본이기 때문에 여기에 맞게 메뉴를 만들고 요리를 가르치며 레시피를 수정할 때도 있어요."
박현자 씨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일본 사람들도 한국 음식이 훨씬 맛있다고 하는데 한국 음식은 먹고 나서 예쁘지가 않아요. 일본 음식은 먹고 나면 남는 게 없지만, 게장이나 삼계탕은 뼈나 껍질이 뱉어야 하는데 일본인들은 이걸 싫어해요. 맛은 100% 한국 음식으로 하되 모양은 현지 문화와 접목해 더욱 정갈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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