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세상을 구한다' 아동구호 100년

입력 2019-05-16 08:00  

'아이가 세상을 구한다' 아동구호 100년
1919년 영국서 세계 첫 아동구호 NGO 세이브더칠드런 탄생
'수혜국→후원국' 빛나는 변신…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개인 정기후원규모 세계 3위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 "굶주린 아동은 먹여야 하고, 아픈 아동은 치료해야 하며, 발달이 뒤처진 아동은 도와야 하고, 엇나간 아동은 돌아올 기회를 주어야 하고, 고아와 부랑아에게는 주거와 원조를 제공해야 한다" (세이브더칠드런 창립자 에글렌타인 젭이 1923년 발표한 아동권리선언문의 일부)
아동이 인류의 미래며 자산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전 세계 곳곳에서는 '아동은 보호받아야한다는' 당연한 주장이 공허한 외침이 돼 소리 없이 사라진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 시작된 아동 권리 옹호 운동은 2019년에도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전쟁, 질병, 기아, 학대, 언어폭력 등 어린이의 앞길을 막는 벽은 여전히 높고 이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에는 너무나 작고 연약하다.


◇ '100년전 그때처럼' 전 세계 4억명의 아동, 전쟁으로 고통받아
세계 최초 아동구호 비정구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의 활동 역사를 들여다보면 연약한 아동을 공동체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키워내기 위한 전세계인들의 피땀어린 노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아동 권리 옹호 운동은 1919년 5월 영국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에 전단을 뿌린 한 여성의 활동에서 시작됐다.
세이브더칠드런 창립자 에글렌타인 젭이 배포한 이 전단에는 극심한 굶주림으로 팔다리가 앙상하게 드러난 오스트리아 어린이의 모습이 담겨 있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연합국이 펼친 봉쇄정책으로 극심한 가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적국을 돕는 배신자'로 불릴 정도로 젭을 바라보는 영국인의 시선은 싸늘했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전쟁으로 인한 아이들의 희생을 막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결국 그는 뜻을 같이하는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같은 해 5월 19일 런던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세이브더칠드런 펀드'를 출범시키게 된다.
이후 세이브더칠드런은 국적, 종교, 이념을 초월해 제2차세계대전, 베트남 전쟁, 르완다 대학살 등 현대사의 비극이 발생한 다양한 현장에서 단 1명의 아동이라도 더 구하기 위한 활동을 펼쳤다.

이들의 헌신적인 활동에도 전 세계 아동의 미래는 그렇게 밝지만은 않다.
16일 세이브더칠드런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분쟁 지역(아프가니스탄, 예멘, 남수단 등)에 사는 아동은 4억2천만명으로 전 세계 아동의 5분의 1에 달한다.
헬레 토르닝슈미트 세이브더칠드런 대표는 지난 2월 뮌헨 안보회의를 앞두고 발간한 '아동에 대한 전쟁을 멈춰라'(STOP THE WAR ON CHILDREN) 보고서를 통해 "분쟁 지역을 살아가는 아동의 숫자는 지난 20년간 가장 많다"며 "오늘날 전쟁 방식은 아동들에게 더 많은 고통을 주고 있다"고 호소했다.


◇ 생존·교육권 넘어 '놀 권리'까지…시대에 맞춰 확장하는 아동 인권
아동 권리 옹호가 필요한 나라는 분쟁 지역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인권의 개념이 시간이 지날수록 넓어지는 것처럼 아동권도 생존의 차원을 넘어서 교육, 학대 금지, 자유롭게 놀 권리로까지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스쿨미', '놀이터를 지켜라' 프로젝트는 시대에 맞춰 변화하는 아동 인권의 모습을 적절히 담은 사례 중 하나다.
빈곤, 사회적 악습, 편견으로 인해 교육의 기회를 빼앗긴 아프리카 여아들을 지원하는 스쿨미 사업은 2012년부터 코트디부아르,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우간다 등에서 진행 중이다.
놀이 환경 개선 사업인 '놀이터를 지켜라'는 우리나라 아동의 삶의 만족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이라는 사실에 주목해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가 국내 여러 아동단체 중 가운데 2014년 처음으로 시작했다.
보건복지부의 2013년 아동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동 3명 중 1명은 하루에 30분 이상 놀지 못한다.
우리나라 아동의 모습의 '모든 아동은 휴식을 충분히 즐기고 나이에 맞는 놀이와 오락 활동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와 괴리가 크다.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오준 이사장은 지난 2월 진행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세이브더칠드런의 지향점은 아동의 생존·보호·교육·참여고 아동 보호와 교육의 문제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존재한다"며 "모든 아동에겐 '놀 권리'가 있는데 지나친 학업 부담 등으로 인해 우리나라 아동은 이 권리가 박탈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 수혜국에서 후원국으로…선진국 넘어선 한국 아동 구호사업 '폭풍성장'
우리나라에 세이브더칠드런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6.25 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7월부터다.
세이브더칠드런 영국·뉴질랜드·스웨덴 지부는 '우리가 아이를 구하면 아이가 세상을 구한다'는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공동으로 부산에 세이브더칠드런 한국지부를 설립했다.
세이브더칠드런 한국지부는 부산 괴정진료소, 부산 중앙진료소, 마산 결핵 병원 내 아동 병동을 운영했고 부산 내 3개의 탁아소를 설치해 전쟁고아와 아동의 생활을 살폈다.
이후 국내 세이브더칠드런 활동은 우리나라 경제 성장에 발맞춰 구호 사업에서 아동 교육, 지역주민 자립, 모자 보건상담 등 개발 사업으로 초점이 옮겨갔다.

현재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는 '수혜국에서 후원국으로 변신한 유일한 나라'라는 평가를 넘어서 기존 후원국의 활동을 넘어선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의 활동 예산 규모는 전 세계 세이브더칠드런 후원국 28개국 가운데 8위를 차지한다.
후원금 수입은 2017년 기준 전 세계 세이브더칠드런 후원국 가운데 다섯 번째로 규모가 크다.
주목할만한 부분은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의 개인 정기후원 규모가 전 세계 세이브더칠드런 지부 가운데 이탈리아,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크다는 점이다.
2017년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에 모인 개인 정기 후원금은 4천500만달러(약 535억원)로 세이브더칠드런 전체 개인 후원금의 12%를 차지한다.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관계자는 "개인 정기후원 비중이 높으면 그만큼 재원의 예측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라며 "우리나라는 전 세계 세이브더칠드런 회원국 중에 가장 재무건전성이 우수한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sujin5@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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