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하위 20% 지원'에 힘실어…일자리, 미세먼지, R&D에도 중점
지출구조조정 병행…2019∼2023년 총지출증가율 7%대 유지될지 주목
(세종=연합뉴스) 이 율 김연정 김경윤 기자 = 문재인 정부가 3년차를 맞아 자영업자와 고용시장 밖 저소득층의 소득개선과 일자리 창출에 돈을 더 풀 전망이다.
지금까지의 성과에도 재정의 역할이 컸지만, 앞으로는 국민들이 삶의 질 개선을 체감할 수 있도록 재정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내년 경제활력 둔화와 재정 분권에 따라 세입여건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앞으로 2023년까지 연평균 총지출 증가율이 현행 2018∼2022년 중기재정계획이 잡았던 7.3%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저소득층 소득개선·일자리 창출에 '재정의 적극적 역할' 강화
16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온 큰 그림은 명확했다. 앞으로 재정이 더욱 과감하고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3년까지 5년간 재정운용방향을 논의한 이날 회의에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전 국무위원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조정식 정책위의장, 정성호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지금까지) 성과 뒤에는 재정의 역할이 컸다"면서 "그러나 아직 전반적 삶의 질 개선을 체감하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많다. 앞으로 재정이 더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자영업자와 고용시장 밖에 놓여있는 저소득층이 겪는 어려움은 참으로 아픈 부분"이라며 "고용 확대와 한국형 실업 부조 도입과 같은 고용안전망 강화, 자영업자 대책 등에 재정의 더 적극적 역할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저성장과 양극화, 일자리, 저출산·고령화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 해결이 매우 시급하다며 재정의 과감한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라고도 강조했다.
저출산에 대한 획기적 대책 마련과 별도로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한 중장기적 재정혁신방안까지 함께 강구해나가야 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홍 부총리는 이날 '혁신적 포용국가를 위한 재정운용방향'이라는 주제발표에서 혁신적 포용국가의 핵심전략이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를 내도록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 실현을 위해 ▲ 적극적 확장적 재정 기조 유지 ▲ 재원 배분 때 혁신성·포용성 투자 강화 ▲ 중앙-지방-민간 간 역할분담과 협력 강화 등 세 가지 방향에 더해 지출구조조정 등을 통한 중장기 재정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는 이른바 '3 플러스 1' 전략을 내세웠다.
재원배분의 우선순위는 저소득층인 소득 1분위(하위20%)의 소득개선, 일자리 창출, 미세먼지 저감 투자, 혁신성장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무역 다변화를 위한 신남방·신북방 지원, 남북간 판문점선언 이행에 두겠다고 했다.
회의에서는 특히 소득 1분위를 겨냥한 맞춤형 지원책이 중점적으로 거론됐다.
예를 들어 소득1분위 중 노인과 근로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중증장애인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 적용 제외, 수급자·부양의무자 재산기준 완화 등과 같은 소득지원 대책을 확대해 나가자는 방향이 제시됐다.
아울러 소득1분위 가운데 신중년·근로능력자에 대해서는 사회서비스·노인·사회적 경제 일자리를 늘리고, 근로소득공제를 통한 탈빈곤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정책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 2023년까지 연평균 총지출 증가율 7%대 유지할까
당정이 앞으로 3년간 재정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실질적인 총지출 증가율이 어느 수준에서 결정될지는 현재로선 가늠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내년에는 세입여건이 종전만큼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아서다.
2018∼2022년 중기재정 운용계획에 따르면 2022년까지 연평균 중기 재정지출 증가율은 7.3%다. 2017∼2021년 계획 5.8%보다 1.5%포인트나 상향조정됐다.
올해 재정지출 증가율 9.7%, 내년은 7.3%, 2021년은 6.2%, 2022년은 5.9%를 반영한 수치다.
경제활력 둔화와 재정 분권에 따라 내년에는 세입여건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당장 지방소비세율은 올해 15%, 내년에는 21%로 인상된다. 지방소비세는 지방재정을 위해 국세인 부가가치세의 일부를 지방세로 전환한 세금이다. 지방소비세율을 계획대로 높이면 지방재정이 2019년 3조3천억원, 2020년 8조4천억원씩 각각 늘어난다. 그만큼 중앙재정은 줄어드는 것이다.
재정이 적극적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재정수지가 단기적으로 악화할 가능성도 거론됐다. 2018∼2022년 중기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는 -3% 이내에 관리하는 게 목표다.
문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우리의 국가재정이 매우 건전한 편이기 때문에 좀 더 긴 호흡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면서 "혁신적 포용국가를 위한 예산은 결코 소모성 지출이 아닌 우리 경제 사회의 구조개선을 위한 선(先)투자"라고 말했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과감한 지출구조조정의 필요성도 강조됐다.
문 대통령은 "부처별로 관성에 따라 편성되거나 수혜계층의 이해관계 때문에 불합리하게 지속하는 사업을 원점에서 꼼꼼히 살피고 낭비 요소를 제거해달라"고 당부했다.
구윤철 기재부 2차관도 "정부의 적극적 재정 역할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미래세대에 큰 부담을 지우지 않도록 중장기 재정건전화 필요성에 대해서도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관련, 참석자들은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 분야별 투자 우선순위 점검 ▲ 지출효율화 ▲ 복지전달체계 합리화를 통한 부정수급 관리 강화 등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정부는 이날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2019∼2023 국가재정운용계획과 내년도 예산안을 수립할 계획이다. 지출 증가율 규모는 오는 9월초 국가재정운용계획을 국회에 낼 때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 전문가 "재정지출 여력 충분" vs "재정수지 악화 우려"
전문가들은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기존의 재정확대 기조의 '유지'를 넘어서 보다 공격적인 재정 편성과 과감한 재정의 역할이 강조된 데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한편에서는 세수 여건이 좋고 국채 이자 부담이 적은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재정지출에 무리가 없고 여력이 충분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잠재 성장률이 둔화하면서 성장률이 예상치보다 낮아지고 있어서 총수요 진작 차원에서 경기 부양을 위해 적극적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며 "국가 채무도 낮은 편이고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세수 추계 오류 등으로 인해 확장 재정이 필요한 시점에 진행됐던 실질적인 재정 긴축 기조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적극적인 재정지출을 통해 시장 경제의 활성화를 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정훈 재정정책연구원 원장은 "경기 자체가 총수요가 너무 부족한 상황인 데다 세수 여건이 좋고 국채 이자 부담이 굉장히 줄었기 때문에 지금 정부가 재정을 통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자율이 낮아서 정부 부채의 부담이 현저히 줄고 있고, 가계는 가계부채 문제로 소비가 확실하게 살아나지 못하고, 수출도 미·중 무역 마찰로 아주 좋을 것이라 기대하기 힘들고, 기업도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상황이므로 정부만이라도 재정지출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재정수지 악화를 들어 '확장 재정' 방침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은 재정확대를 할 때가 아니고, 재정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라며 "정부가 목적이 불분명하면서 재정확대를 통해 무조건 경기 부양을 하려고 하는데, 재정으로 경기 부양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정확대보다는 기업을 신뢰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등 민간 부문에 활력을 불어넣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제 상황이 일시적으로 안 좋은 것이라면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 것도 문제가 없지만, 장기적으로 계속되는 다른 문제가 있으면 단순히 돈만 넣기보다 그 부분을 치료해야 한다"며 "증상에 따라 치료약도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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