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형님과 저, 이렇게 딱 둘 뿐이었는데…"
17일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총탄에 사망한 정상덕(당시 18세) 군의 묘를 말없이 바라보던 동생 정인복(53) 씨에게 짙은 그리움이 묻어났다.
입을 굳게 다문 정씨는 미리 준비해온 소주잔을 묘 구석구석에 뿌렸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정씨는 형과 술 한잔 나눌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형이 차가운 흙 속으로 들어가고 난 다음에서야 이렇게나마 술잔을 기울였다.
해남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형은 80년 5월 23일 고향인 해남에 광주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해남읍으로 가는 시위대 버스에 타고 있었다.
광주를 고립시키기 위해 시 외곽을 철저하게 봉쇄하고 있었던 계엄군은 흰재고개를 넘어가던 시위대 버스를 발견하고 총격을 퍼부었다.
이때 총상을 입은 형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식불명 상태로 사경을 헤매다 결국 81년 9월 세상을 떠났다.
큰아들을 잃은 부모님을 챙기느라 슬퍼할 겨를도 없었던 인복씨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참을 수 없을 것 같던 슬픔도 시간이 흘러 갈무리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형이 밝게 웃는 모습은 정씨의 가슴에 남아있다.
그는 "우리 가족은 시신이라도 묻을 수 있었지만, 시신조차 찾지 못한 행방불명자 가족들은 심정이 오죽하겠느냐"며 오히려 다른 희생자 가족들을 걱정했다.
이어 "보수 정권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이 유족으로서 유일하게 바라는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려면 망언이나 하지 말고 조용하게 있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국립 5·18민주묘지에는 제39주년 5·18 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유가족과 추모객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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