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내용 윗선 보고' 법관들, 법정서 혐의 부인 "직무상 행위"

입력 2019-05-20 13:50  

'영장내용 윗선 보고' 법관들, 법정서 혐의 부인 "직무상 행위"
검찰 "성창호, 김경수 실형 탓에 기소했다는 주장은 억측"
재판부 "힘 들어간 검찰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수정 요구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2016년 '정운호 게이트' 당시 검찰 수사 상황을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법관들이 법정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조의연·성창호 전 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변호인들은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날은 정식 공판이 아니라 피고인들은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신 전 수석부장판사는 '정운호 게이트' 당시 판사들을 겨냥한 수사를 저지하기 위해 영장전담 재판부를 통해 검찰 수사상황과 향후 계획을 수집한 뒤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를 받는다.
조·성 부장판사는 당시 영장전담 법관으로서 수사기밀을 보고한 혐의로 기소됐다.
신 전 수석부장판사의 변호인은 "형사 수석부장판사의 직책으로서 당연히 보고할 의무가 있는 법관 비리를 사법행정의 상급기관인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것"이라며 "사법행정상 필요하거나 주요사건을 보고하는 예규의 취지에 따른 것이므로 직무상 정당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또 수사 정보를 해당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상급기관인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만큼, 공무상 비밀누설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했다.
조·성 부장판사의 변호인도 "형사 수석부장판사가 내용을 법원행정처에 보고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통상 업무의 일환으로 결과와 내용을 설명했을 뿐"이라며 "기관 내에서 보고한 것이 기본적으로 공무상 비밀의 누설이라고 볼 수 없다"며 비슷한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이에 대해 검찰은 "피고인들은 여러 차례 예규를 위반해 은밀하게 검찰 수사 방향을 알 수 있는 문건을 보고했고, 행정처에서 법관의 가족들에 대한 영장심사 가이드라인을 전달받아 영장 재판에 반영하기까지 했다"며 "비밀인 것을 알면서 제3자에게 고지함으로써 누설 행위를 했고, 이를 통해 국가의 수사 기능과 영장 재판의 공정성에 장애를 초래했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또 성창호 부장판사 측이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김경수 경남도지사에 대해 실형을 선고하자 검찰이 정치적 이유로 기소했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반박했다. 성창호 부장판사는 김경수 지사의 1심 재판장이었다.


검찰은 "지난해 9월 성 부장판사를 조사한 직후 피의자로 입건했고, 이후 다양한 범죄혐의를 추가 확인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올해 2월 24일 피의자로 소환 조사한 후 사정이 바뀐 것이 없음에도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근거 없는 의혹 제기이고 억측"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법정에서는 여느 사법농단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검찰의 공소사실이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배되느냐를 놓고도 공방이 벌어졌다.
다만 다른 사건과 달리 재판부는 검찰이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배한 부분이 있어 보인다며 이를 수정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재판부는 "최종 판단은 아니지만, 검찰의 공소장이 통상적인 공소장과는 달리 힘이 많이 들어가 있다"며 "피고인들과 직접 관련이 없는 법원행정처 내부 사정 등이 상당 부분 들어가 있는데,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반되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공소장 첫 10페이지는, 통상적인 재판이었다면 '피고인들은 공모하여'라는 말 한마디로 요약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직접적 범죄사실과는 거리가 먼 모두사실이 입증되는지를 두고 힘을 쏟을 것이 우려된다며 검찰이 정리해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내비쳤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다른 사법농단 사건에서 루틴하게 나오는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 주장과는 조금 다르다고 본다"며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비춰 봐도 명시적으로 위배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sncwoo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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