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스님, '토리노 한국주간' 계기로 사찰음식 선보여
(토리노=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슬로푸드' 운동의 발상지로 유명한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의 주도 토리노에서 사찰의 식사법인 '발우공양'과 만났다.
21일(현지시간) 토리노 시내 중심에 위치한 동양박물관(MAO)에서 정관스님(백양사 천진암 주지스님)과 함께 하는 발우공양 체험 행사가 열려 주목을 받았다.
다채로운 한국문화를 토리노에 소개하는 '한국 주간'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마련된 이날 발우공양 체험은 불과 몇 분 만에 온라인 신청이 마감될 만큼 큰 인기를 누린 것으로 전해졌다.
공영방송 RAI, 일간 라스탐파, 코리에레델라세라 등 현지 언론도 대거 취재를 나와 이날 행사에 대한 관심을 짐작케 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참가 티켓을 얻은 20명의 현지 주민들은 발우공양의 의미와 방법을 설명하는 정관스님의 말을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한 뒤 스님이 준비한 밥과 능이버섯국과 7가지 반찬으로 구성된 사찰음식을 큼지막한 나무그릇(발우)에 담아 명상을 하듯이 음미하며 식사를 시작했다.
정관스님이 준비한 반찬은 5년 발효한 복분자즙으로 양념을 한 감말랭이, 묵은 배추김치, 토마토 장아찌, 더덕잣즙 무침, 스님이 직접 산에서 채취한 취나물 무침, 인삼초절임, 연근 튀김, 표고버섯 장조림 등이었다.
특히 토마토 장아찌는 피자나 파스타 등으로 토마토를 즐겨 먹는 이탈리아인들의 식습관을 고려해 정관스님이 특별히 한국에서 만들어왔다.
더덕잣즙 무침에는 백양사 앞마당의 500년 된 탱자나무의 열매로 만든 탱자청이 들어갔다고 한다.
정관스님은 "발우공양은 먹을 만큼만 음식을 담아 나중에 남는 음식이 없도록 하는 친환경적인 식사법"이라며 "평정심과 자비심을 일으키는 수행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시식 전에는 정관스님의 선창에 맞춰 "음식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하고, 마음의 욕심을 버리며, 음식을 준비한 사람과 자연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진리를 실천하기 위해 이 음식들을 먹습니다"라는 내용의 문장을 함께 복창해 눈길을 끌었다.
정관스님이 "반찬 가운데 김치 한 조각을 남겨서 마지막으로 발우를 닦을 때 사용하라"고 설명하자, 참석자들은 서툰 손짓으로 김치와 물을 이용해 먹은 그릇을 깨끗이 정리함으로써 발우공양의식을 마무리했다.
이어, 김으로 만든 부각 등 후식과 함께 연잎차를 마시면서 소감을 나누는 시간이 뒤따랐다.
한 이탈리아 여성은 "음식 자체의 맛도 너무 좋고, 음식과 자연에 대한 명상을 할 수 있는 감동적인 기회였다"며 "한국 음식은 채소를 다듬는 것부터 요리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특별한 것 같다"고 밝혔다.
태국 출신이라고 밝힌 또 다른 여성은 "넷플릭스를 통해 정관스님이 진행한 사찰음식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고 참가 신청을 하게 됐다"며 "오늘 행사에 오기 전에는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스트레스받았는데, 발우공양을 하니까 마음이 너무 평온해졌다"고 말하며 웃었다.
정관스님은 "작년에 토리노에서 처음 발우공연 시연 행사를 진행할 때에도 느꼈지만, 이탈리아가 미식의 나라라 그런지 음식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무척 진지하다"며 "삶의 본질인 음식을 통해 이곳 사람들과 교류하고, 오랜 수행의 과정에서 형성된 발우공양이라는 한국의 음식 문화와 철학적 정신을 알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정관스님은 작년 9월 토리노에서 열린 슬로푸드 박람회 '살로네 델 구스토'에서도 발우공양 시연을 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바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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