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경찰도 반응 갈려…"도움 될 것", "탁상공론"
(서울=연합뉴스) 사건팀 = "명확한 물리력 행사 기준이 있으면 경찰 대응도 좀 더 적극적으로 변하지 않을까." (직장인 신모 씨)
"탁상공론이다. 물리력 기준이 생긴다 해도 달라지는 게 없을 것 같다." (지구대 경찰관)
22일 경찰청이 물리력 행사와 관련한 기준을 제시하자 시민들 사이에서는 경찰이 상황에 따라 적절한 공권력 행사를 할 수 있을 거라는 반응과 함께 과잉대응으로 인한 인권 침해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현실성이 없는 탁상공론이라는 지적이 나오는가 하면 일부 경찰관들은 현장 업무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경찰이 예규로 제정한 '경찰 물리력 행사의 기준과 방법에 관한 규칙 제정안'에는 물리력 사용과 관련한 구체적 기준이 담겼다.
대학생 하민준(20) 씨는 경찰의 물리력 사용 기준에 대해 "앞으로 경찰이 적절한 대처를 더 잘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전까지는 경찰이 과잉진압으로 오해를 받는 등 위험 때문에 소극적으로 행동했지만, 이제 구체적인 기준이 생겨 책임이 명확해졌으니 마음 놓고 업무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회사원 권모(31) 씨는 "시민들만큼이나 경찰도 보호돼야 한다"며 "칼이나 무기를 든 범죄자에게는 경찰이 더 엄격하게 법 집행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신종관(67) 씨는 "지금까지 경찰이 끌려다니는 경향이 있었다"며 "이제 기준을 세웠으니 주취 난동자 등을 적극적으로 제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이 실효성이 없다거나 인권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대학생 안윤정(24) 씨는 "소극적, 적극적, 폭력적 저항이라고 분류를 한 점은 체계적으로 보이지만 경찰이 저항하는 사람 단계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경찰이 매뉴얼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직장인 정모(38) 씨는 "경찰이 마련한 물리력 사용기준은 인권 보호보다는 효과적인 제압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 같다"며 "이번에 기준을 마련한 것을 계기로 경찰 대응이 과잉으로 흐르는 것은 아닌가 우려스럽다"고 했다.
일선 경찰들의 반응도 엇갈렸다.
서울 구로구의 한 파출소 A 팀장은 "예규가 시행되면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피 혐의자에게 물리력을 어느 정도로 행사할지 판단하기 용이해질 것"이라며 "경찰관들은 변화에 대체로 긍정적으로 반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대응 단계가 지나치게 세분돼있고 복잡하다는 지적에 "비례의 원칙에 따라 단계별로 물리력 사용기준을 세울 수밖에 없다"며 "새 예규 도입을 통해 앞으로 피혐의자 진압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울 강남구 B 파출소장은 "구체적인 매뉴얼이 있을수록 책임과 권한이 명확해진다"며 기준 마련을 환영했다.
B 소장은 "기준 내용은 이제껏 일선에서 하던 대응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 수준"이라면서도 "지금까지의 '알아서 하라'는 식의 모호한 기준보다는 훨씬 낫다"고 말했다.
나름의 기준을 세운 것은 바람직하지만 실효성은 없어 보인다는 회의적 반응도 많았다.
서울 용산 지역 파출소에 근무하는 C 팀장은 "책과 실무는 다르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큰 틀에서 보면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하지만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며 "매뉴얼이 있다 해도 결국에는 현장에 나가 있는 경찰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동대문 지역 파출소에 근무하는 D 경위는 "현장에서 적극적 저항과 소극적 저항을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며 "경찰관들이 마주하는 상황은 획일적이지 않아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데, 일선 경찰관들에게 혼란만 줄 것 같다"고 우려했다.
방배경찰서의 E 경위는 "매뉴얼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다"며 실효성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그는 "만약 물리력 사용기준에 따라 진압했는데 대상자가 크게 다치기라도 한다면 재판 과정에서 경찰의 잘못이 될 수도 있다"며 "매뉴얼이 있다고 해도 현장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강남의 한 파출소 F 팀장은 "매뉴얼이 복잡할수록 현장 근무자들은 불편할 뿐"이라며 "현장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수십 가지 상황이 벌이지는 만큼 기준은 최대한 단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경찰 제압으로 부상자가 생기더라도 경찰의 행위가 정당했다면 적극적으로 면책이 돼야 한다"며 "정당한 법집행 과정에 대한 국가적인 보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 같은 우려에 대해 "기본적으로 경찰관들이 현장 상황을 판단할 수 있도록 근거를 준 것"이라며 "물리력 사용으로 인한 법적 다툼이 있을 때 매뉴얼에 따라 물리력이 행사됐다면 중요한 면책 준거가 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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