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이란이 배후'…美·사우디, 군사행동 명분 쌓나

입력 2019-05-22 18:04  

'모두 이란이 배후'…美·사우디, 군사행동 명분 쌓나
이란 최대압박해 경제 제재 효과 극대화
"'호전적 이란' 이미지 각인 시도" 분석도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최근 잇달아 중동에서 벌어진 사건의 배후로 이란을 가리키고 있다.
미국이 걸프 해역으로 항공모함 전단과 폭격기 편대를 증파하면서 중동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한 예민한 국면에 공교롭게 터진 이들 사건에 이란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미국의 증파 뒤 중동에서는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 유조선 피격(12일),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 송유시설 드론 공격(14일), 바그다드 그린존 로켓포 1발 공격(19일), 사우디 중부 탄도미사일 요격(20일), 사우디 남부 나즈란 공항 드론 공격(21일)이 연쇄로 발생했다.
이 가운데 아람코 송유시설과 나즈란 공항을 공격한 주체는 예멘 반군으로 밝혀졌다. 예멘 반군은 스스로 공격 사실을 발표하면서 21일 나즈란 공항은 사우디의 주장대로 민간 시설이 아니라 공항 내 무기고를 타격했다고 반박했다.
20일 탄도미사일 요격과 관련, 사우디는 예멘 반군이 이슬람 성지 메카를 겨냥했다고 했으나 예멘 반군은 이를 부인하면서 발사 사실 자체도 확인하지 않았다.
미국과 사우디는 예멘 반군을 이란의 대리군으로 보기 때문에 사우디를 향한 공격의 배후를 이란으로 확신한다.
예멘 반군의 드론, 탄도미사일 공격은 잦은 일이지만 시점이 시점이니만큼 사우디는 예멘 반군 너머에 있는 이란을 지목했다.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민감한 유조선 공격의 경우 현재 사우디 우방 UAE가 조사중이다.
이와 관련,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21일 최근 페르시아만(걸프 해역)에서 일어난 일련의 공격의 배후가 이란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주장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언론과 인터뷰에서 "지난 십년간 우리가 봐온 중동 내 모든 충돌과 이번 공격의 양상에 비춰볼 때 이란이 이들 사건의 배후에 있다는 건 상당히 가능성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라크 바그다드 그린존 로켓포 공격 직후인 19일 트윗을 통해 "이란이 싸우길 원한다면, 그것은 이란의 공식적 종말이 될 것이다. 다시는 미국을 협박하지 말라!"라며 발사의 주체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이란을 가리켰다.
그린존에는 미국 대사관이 있다. 로켓포 낙하지점과는 약 1㎞ 거리다.


미국과 사우디의 대이란 압박은 곧 지역 내 '전쟁 공포'로 이어졌다.
미국이 선언한 이란에 대한 최대압박 전략 탓에 그렇지 않아도 이란의 경제가 어려워진 판에 미국발 전쟁 공포가 발휘하는 위축 효과로 경제 제재의 압력은 극대화되리라고 이란 전문가들은 대체로 전망한다.
동시에 이란이 국제 사회에 호전적이고 거친 국가로 각인하려는 미국의 '이란 악마화 전략'도 이런 움직임의 배경으로 분석된다.
미 국무부는 21일 "19일 시리아 북서부에서 화학무기가 사용됐다는 정보를 모으고 있다"라면서 "시리아 정부가 이를 사용했다면 우리는 다시 한번 강력히 경고한다"라고 발표했다.
이란이 지원하는 시리아 정부군이 국제적으로 금지된 화학무기를 썼을 가능성을 내비쳐 '이란 진영'을 도덕적으로 깎아내리려는 의도도 섞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테헤란의 한 정치·안보 전문가는 22일 연합뉴스에 "압도적인 미디어 영향력을 지닌 미국의 이런 선전전으로 앞으로 중동에서 폭력사태가 벌어지면 모두 이란을 가리키게 될 것이다"라며 "현재 위기는 미국이 원인인데 책임은 결국 '갈등과 전쟁을 좋아하는' 이미지로 각인된 이란이 뒤집어 쓰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살얼음판'과 같은 정세 속에서 이란 내부에서는 일련의 움직임이 이란에 대한 군사행동의 명분을 쌓으려는 미국과 사우디의 공작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될 정도다.
긴박한 분위기에서 사건의 배후로 몰린 이란도 최근 사태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헤시마톨라 펠라하트피셰 이란 의회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장은 20일 트위터에 "바그다드 그린존 공격에 맞춰 사우디가 아랍권 정상회의를 소집한 것은 모든 혼란의 배후가 사우디라는 점을 증명한다"라고 주장했다.
hsk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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