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꽃·이몽·해치 미진한 성적…"극성 높일 변화 방안 찾아야"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송은경 기자 =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오랜만에 사극이 쏟아져 나왔지만 완성도 또는 흥행 면에서 아쉬움이 적지 않다.
가뜩이나 제작비가 일반극의 배로 들어 방송사들이 사극 제작에 몸을 사려왔는데, 임정 100주년이라는 명분을 찾아 야심차게 내놓은 작품들마저 흥행하지 못하면서 앞으로 사극 보기가 더 어렵게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SBS TV 금토극 '녹두꽃'은 정치사극에서 선이 굵으면서도 섬세한 필력을 자랑하는 정현민 작가가 대본을 맡아 완성도는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학운동을 배경으로 하되 전봉준이 아닌, 운명이 엇갈린 가상의 이복형제를 내세운 것도 세련됐다는 평이다. '민초의 힘'이라는 정치적 메시지 역시 분명하다.
다만 동학이라는 소재 자체가 무겁기 때문에 '불금'에 시청자 유입이 쉽지 않다는 단점이 확연하다. 시청률 20%를 돌파하며 큰 인기를 끈 전작 '열혈사제'의 장르와 내용을 떠올려보면 수긍이 된다.
MBC TV 토요극 '이몽'은 김원봉이라는 드라마틱한 인물을 소재로 하고도 그 매력을 제대로 끄집어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김원봉과 이영진(이요원 분)이 성장과정이 필요없는, 이미 '완성형 투사'라는 점도 극성을 떨어뜨린다.
여기에 1990년대 또는 2000년대 작품을 보는 듯한 구식 연출과 스토리도 발목을 잡는다. '완성도'가 문제인 사례다.
최근 종영한 SBS TV '해치'는 젊은 영조의 성장과정과 정치사극 특유의 역학 구조를 녹여낸 정통사극이라는 평을 받았지만 연출이 초반 스토리와 미스매치하는 경향을 보인 점, 후반부 주요 에피소드가 힘있게 그려지지 못한 점 등이 지적됐다.
이처럼 야심차게 선보인 사극들이 큰 성과를 내지 못하자 KBS가 안중근 의사를 주인공으로 준비 중이던 '의군'은 사실상 제작이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사극은 높은 시청률을 보장하는 장르였지만 이제는 그를 담보할 수 없게 됐다. 최근 OCN을 필두로 전성기를 맞은 장르극들이 사극보다도 큰 긴장과 극성을 보여주면서 사극이 변화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25일 "정통사극에 힘이 빠지면서 퓨전이나 판타지 사극이 많이 나왔는데, 역사를 버리니 또 힘이 빠지면서 너무 만화처럼 흐른 경향이 있다"라며 "그러다 최근 정통사극으로 돌아온 셈인데, 정통으로의 회귀가 답이 아님을 또 깨닫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내외 다양한 장르극들로 인해 시청자들이 수위와 극성이 높은 드라마에 많이 노출된 상황에서, 정통사극은 극성이 약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라며 "너무 낯설지 않되 조금씩 변화하는 '신세대 사극'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사극들이 표면적인 메시지만 있고,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교훈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 겸 드라마평론가는 특히 일제강점기 배경의 '이몽' 등에 대해 "이 시대 사극은 '일제=악(惡)'이라는 뻔한 전제가 들어가 있어 교조적으로 흐르기 쉽다"라고 우려했다.
사극이 최근 연성화하면서 다른 드라마들과의 차별성이 적어졌고, 현실 정치 비판 기능도 수그러들었다는 해석도 있다.
윤 교수는 "사극은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해왔는데, 이제는 판타지 사극으로까지 넘어오다 보니 멜로극, 정치극과의 차별성이 없어졌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정도전'이나 '뿌리 깊은 나무' 등이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지금은 굳이 사극을 안 봐도 될 정도로 현실 정치가 더 재밌는 시대"라며 "또 유튜브 등 여러 매체를 통해 현실을 직접 비판하고 풍자할 수 있으니 사극으로 대리만족을 할 필요도 없어졌다"라고 꼬집었다.
이밖에도 고정형 TV가 아닌 이동형 TV로 콘텐츠를 소비하고, 호흡이 짧은 작품을 선호하는 최근 트렌드까지 고려하면 사극은 '명분 찾기'보다 변화에 주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lis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