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멸시 속 올해 선거 출마자도 극소수…인구 대비 과소 대표돼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 유럽에서 오랫 동안 차별과 멸시를 받아온 소수 민족 집시가 올해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소외될 처지에 놓였다.
2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유럽 지역에 거주하는 집시 인구는 약 1천만명으로 유럽 내 웬만한 중간급 국가의 인구 규모다.
하지만 의석수가 751석에 달하는 유럽의회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의원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현재 유럽의회에서 집시 출신 의원은 고작 3명이 전부다. 스웨덴의 좌파 성향 여성주의 정당인 페미니스트 이니셔티브(Fi), 헝가리 집권 여당 피데스, 독일 녹색당 등에서 각각 1명씩 선출됐다.
이날부터 나흘간 유럽 각국에서 치러지는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집시 출신 출마자 자체가 소수이고 그 가운데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최소 100만 명 이상의 집시가 거주하는 루마니아에선 린다 즈시가(37)라는 집시 여성이 새로운 정당을 설립해 유럽의회 선거에 나서려 했으나 정당 설립에 필요한 20만명의 서명자를 확보하지 못해 출마를 포기한 사례도 있다.
이런 가운데 유럽 전역에 퍼져있는 집시의 삶의 조건은 점점 열악해지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지난 수십 년간에 걸쳐 교육·의료 등에 대한 접근성이 서서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집시의 상당수는 변두리 지역의 다 허물어져 가는 빈민가에 거주하며 광범위한 정치·사회적 차별을 감내하고 있다.
유럽에서 집시를 향한 박해와 멸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수위가 부쩍 높아져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올 초 프랑스 파리에서는 집시들이 아이들을 납치하고 있다는 가짜 뉴스가 유포된 뒤 이른바 자경단(自警團)으로부터 집단 공격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또 반이민 정부가 들어선 이탈리아에선 작년 극우 성향의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이 '집시 등록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불렀다.
유럽 집시 인권센터 관계자는 "정치인들이 이슬람 공포증을 장기간 끌고 가긴 어렵다"면서 "(이슬람계) 난민·이민에 대한 공포가 다소 잦아들면서 집시가 다시 희생양이 됐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유럽 사회에서 배제된 집시의 어두운 미래가 대물림된다는 점이다.
린다 즈시가는 "많은 집시는 '내가 집시 출신이라 가난한 것도, 쓰레기 더미에서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집시를 이렇게 살도록 내버려 둔다면 그들의 후손들이 과연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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