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단체'서 '10만 노조' 거쳐 '법외노조'로…30살 맞은 전교조

입력 2019-05-26 06:11  

'불법단체'서 '10만 노조' 거쳐 '법외노조'로…30살 맞은 전교조
1989년 정부 탄압 속 결성…1999년 합법화…2013년 법외노조화
'교육 민주화' 성과…'교육 정치화' 논란 여전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이틀 뒤인 28일 결성 30주년을 맞는다. 전교조는 '교육의 민주화'를 이끌었다는 평가와 '교육의 정치화'를 불렀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는다.
26일 국가기록원 자료 등을 토대로 정리한 전교조의 30년 발자취에는 교원노조의 태동과 성장, 중대한 고비와 당면 현안, 역사적 평가와 사회적 논란까지 배어 있다.
국내에서 처음 교원노조가 결성된 것은 1960년 4·19혁명 직후다. 그해 5월 대구를 시작으로 부산, 서울, 경기, 충남 등에 교원노조가 생겼고 7월 전국단위 노조인 한국교원노동조합총연합회(교조)가 출범했다.
하지만 교조는 1961년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군부가 교원노조 활동을 금지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당시 만들어진 '교육에 관한 임시 특례법'상 교원 노동운동·집단행위 금지조항은 전교조가 설립될 때까지 교원노조·단체 활동을 억압하는 기능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교원노조 결성 움직임이 다시 나타난 것은 1980년대 중반이다.
1985년 '민중교육'이라는 잡지를 발간했다가 해직된 교사들이 이듬해 민주교육실천협의회를 설립했다. 이 협의회는 전교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교육추진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의 토대가 됐다.
전교협은 1987년 6월항쟁 이후 민주화 분위기 속에 그해 9월 출범했다.
전교협은 법 개정을 통한 합법적인 노조 결성을 꿈꿨으나 노태우 대통령이 6급 이하 공무원의 노조 결성을 인정하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좌절됐다. 이에 전교협은 법 개정을 기다리지 않고 노조를 설립하기로 한다.
그렇게 1989년 5월 28일 전교조가 결성된다. 애초 한양대에서 출범식이 열릴 예정이었으나 당국이 경찰을 동원해 한양대를 전면봉쇄하면서 지도부가 연세대로 이동해 출범식을 진행했다. 연세대에 못 들어간 교사들은 건국대에서 결성보고 대회를 개최했다. 전교조는 창립선언문에서 '참교육'을 강령으로 제시했다.
당국의 '보복'은 가혹했다. 전교조를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주요 관련자를 구속했으며 전교조 탈퇴를 거부한 교사 1천500여명을 해직했다. 이런 탄압에 당시 가입 교사 1만2천여명 가운데 90% 가까이가 당국에 '탈퇴각서'를 내기도 했다.
이후 전교조의 최대과제는 합법화와 해직자 복직이 됐다. 해직자들은 1993년 전교조가 교육부의 요구인 '선탈퇴 후복직' 방침을 받아들이면서 1994년 특별채용 형태로 교사로 재임용될 수 있었다.



전교조가 '합법노조'가 된 것은 결성 10년째인 1999년이었다.
한국이 1991년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하면서 전교조를 합법노조로 인정하라는 국제사회의 압박이 시작됐다. 이후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 10월 노사정위원회 합의를 토대로 1999년 1월 국회에서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제정됐고 같은 해 7월 발효되면서 전교조는 합법노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합법화된 지 불과 10여년 만에 전교조는 다시 법 테두리 밖으로 밀려 나갈 위기에 처한다.
전교조 규약 중 '부당해고된 교원은 조합원이 될 수 있다'는 조항이 문제였다.
교원노조법은 해직자의 경우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한 경우에 재심 판정이 있을 때까지만 예외적으로 노조원이 될 수 있는 교원으로 간주하는데, 전교조 규약은 이에 위배된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었다.
고용노동부는 2010년과 2012년, 2013년 세 차례 전교조에 시정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해직을 불사한 교사들에 의해 결성·운영된 전교조로서는 노동부의 명령을 수용하기 어려웠고 끝내 이행하지 않았다.
결국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10월 노동부는 전교조에 '교원노조법에 따른 노조로 보지 않는다'고 통보했다. 바로 '법외노조 통보'다.
전교조는 이후 법외노조 문제해결에 말 그대로 총력을 다했다.
법외노조 통보처분 직후 전교조는 법원에 효력정지 신청과 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효력정지 결정은 세 차례 받아냈으나 본안소송에서는 1심과 2심 모두 졌다.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판결이 나오지 않고 있다.
교육부는 2014년 1심과 2016년 2심 판결이 나온 직후 전임자 복직 등을 내용으로 하는 법외노조 후속 조처를 단행한다. 2016년 복직 명령에 따르지 않은 34명은 면직돼 아직도 교단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법외노조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이전과 달리 각 교육감이 전교조 전임자 활동을 위한 교사의 휴직을 허용해도 교육부가 이를 묵인하는 등 합법노조처럼 '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최근 정부가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장 협약'을 포함한 3개 ILO 핵심협약 비준절차를 추진하기로 하면서 법외노조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생겼다.
그러나 협약비준에 난항이 예상되는 데다 협약비준만으로 전교조가 합법노조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정부 입장이어서 재합법화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한때 약 10만명에 달했던 전교조 조합원(2003년 기준 9만3천여명)은 현재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17명의 교육감 가운데 전교조 출신이 10명이나 되는 등 '영향력'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권위주의적 교육현장을 민주화한 것이 전교조의 가장 큰 공으로 꼽힌다. 특히 촌지 문화를 퇴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심지어 과거 정부가 만든 '전교조 교사 식별법'에 '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가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 학생인권 향상과 일제고사 폐지 등 경쟁을 강요하는 교육문화를 바꾸는 데도 전교조의 역할이 컸다. 전교조는 박근혜 정부 때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막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기도 했다.
전교조는 교육문제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냈다. 세월호 참사 때도 전교조 교사들은 시국선언을 내 진상규명 등을 요구했다.
전교조는 여전히 교육계 '뜨거운 감자'다. 사회현안에 대해 계기수업 등을 통해 편향된 주장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려고 한다는 우려도 아직 존재한다.
전교조를 두고 '이념논쟁'도 항상 뒤따른다. 현안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 개진으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고 교육의 정치화를 불렀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밖에 중앙집권적 조직으로 의사결정이 비민주적으로 이뤄진다는 지적도 있다.
jylee2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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