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해킹에 책임느낀 협력사 직원 우울증…법원 "산재 아냐"

입력 2019-05-26 09:03  

한수원 해킹에 책임느낀 협력사 직원 우울증…법원 "산재 아냐"
파견업체 직원, 해킹 사건 자기 잘못 아닐까 '전전긍긍'
지방 발령 후 우울증 재발, 극단적 선택…法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단정 어려워"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2014년 발생한 한국수력원자력 해킹 사건에 책임을 느껴 스트레스를 받던 파견업체 직원이 우울증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을 두고 법원이 업무상 재해로 보긴 힘들다는 판단을 내렸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장낙원 부장판사)는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지급 청구 소송에서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다.
A씨는 한수원에 파견돼 직원채용과 관련한 컴퓨터 프로그램 유지관리 업무를 맡았다.
그러던 2014년 12월 해킹된 것으로 보이는 한수원의 원전 운전도면 등이 외부에 유출되는 사고가 났다. 당시 검찰은 해킹의 원인이 된 컴퓨터를 찾기 위해 한수원의 협력업체로 수사를 확대했다.
A씨는 업무 특성상 외부에서 직원채용과 관련한 컴퓨터 파일을 전송받는 일이 흔했기 때문에 혹시 외부에서 들여온 파일에 바이러스가 심겨있던 건 아닌지, 자신의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돼 해킹 사건을 일으킨 건 아닌지 불안해했다.
A씨는 병원 정신의학과를 찾아 진찰을 받은 뒤 자신의 회사에 사직 의사를 표시했지만 회사는 사의를 반려하며 병가를 내줬다.
이후 해킹 사고가 A씨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의 우울증 증상은 나아졌다.
그러나 한수원이 경주로 이전하기로 확정하고, A씨의 회사 직원 일부도 경주로 내려가기로 하면서 그의 우울증은 다시 시작됐다. 결국 경주로 발령 나기 일주일 전 A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은 한수원 해킹 사건이 자신의 잘못으로 생겼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A씨의 우울증이 발병했고, 경주 발령을 대비하는 과정에서 우울증이 재발한 만큼 업무상 재해가 맞다며 유족급여를 청구했다. 공단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자 소송으로 다퉜다.
법원은 그러나 "망인의 자살이 사회평균인 입장에서 보아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에 기인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망인의 우울증 발병에 한수원 해킹 사건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는 있다"면서도 "그러나 망인이 수사를 받았다거나 한수원 등이 망인에게 책임을 추궁한 적이 있었다는 정황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망인의 완벽주의적 성향, 지나친 책임의식 등 개인적 소인을 고려하더라도 해킹 사건이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를 줘 우울증을 발병케 한 것으로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방 발령에 대한 심적 부담에 대해서도 "지방 발령은 급작스럽게 결정된 게 아니라 길게는 7개월 전에 결정됐고 팀원들과 함께 이동하는 것이었다"며 견디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라고 봤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s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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