쟝-기엔 케라스·앙상블 레조난츠 내한공연 리뷰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그가 활을 들자 콘서트홀은 어느새 흥미진진한 음악놀이터가 됐다. 연주자들은 마치 게임을 하듯 톡톡 튀어 오르는 음표들을 주고받으며 음악의 기쁨을 나누고, 그들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던 관객들은 음악의 즐거움에 한껏 빠져들었다.
2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펼쳐진 프랑스 첼리스트 장-기엔 케라스(52)와 앙상블 레조난츠의 음악회는 음악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 예술인지 새삼 느끼게 한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
과도한 진지함과 허세를 걷어내고 순수하게 음의 유희를 즐기며 관객과 호흡하는 생기발랄한 연주는 청중의 마음을 열고 긍정의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특히 자유자재로 음을 표현해내는 케라스의 경쾌한 연주는 청중의 열렬한 환호를 끌어냈다.
이번 음악회 프로그램은 결코 대중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매 곡 연주가 끝날 때마다 청중은 열띤 반응을 보였다. 청중의 가슴 속까지 다가가는 훌륭한 연주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음악회 첫 곡으로 연주된 베른트 알로이스 치머만의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은 대부분 청중에겐 낯선 작품이었지만, 앙상블 레조난츠의 호소력 있는 연주 덕분에 처음부터 강렬한 인상을 전해줬다.
앙상블 레조난츠 단원들은 악장의 선도하에 일사불란한 합주를 선보이며 선율의 느낌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수동적으로 연주하는 단원은 단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다. 단원 개개인이 모두 리더가 된 듯 자신감에 찬 어조로 모든 음표를 생생하게 표현한 덕분에 그들이 연주하는 곡은 무엇이든 귀에 쏙쏙 들어왔다.
무엇보다 케라스의 첼로 연주와 함께 한 첼로협주곡은 단연 돋보였다. 전반부에는 밝고 화창한 분위기의 하이든 첼로협주곡 1번을, 후반부엔 다소 어둡고 격정적인 카를 필립 에마누엘 바흐의 첼로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케라스는 작품 성격에 따라 완전히 상반된 스타일의 연주를 들려줬다. 희극이든 비극이든 어떤 배역도 소화해내는 탁월한 배우 같았다. 하이든 협주곡을 연주할 땐 희극배우처럼 갖가지 장식음을 덧붙이고 템포를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며 유머와 해학을 선보이던 그가, 카를 필립 에마누엘의 협주곡에선 심각한 표정의 성격배우처럼 이 곡의 격한 감정 변화를 표현해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앙코르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4번과 1번의 프렐류드를 앙코르로 연주한 케라스는 다시 무대에 등장해 앙상블 레조난츠의 첼로 수석 자리에 앉아 하이든의 교향곡을 연주하며 오케스트라 수석 주자 역할까지 겸했다.
케라스의 선도하에 연주된 하이든 교향곡 48번은 팡파르 풍의 도입부부터 혼 주자들이 고음 선율을 소화해내야 하는 쉽지 않은 곡이지만 앙상블 레조난츠의 연주는 놀랄 만큼 훌륭했다. 1악장 도입부의 팡파르가 연주되자마자 객석에서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고 마지막 4악장까지 교향곡 연주가 모두 끝나자 객석에선 환호와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참신한 프로그램과 뛰어난 앙상블, 깊이 있는 작품 해석에 이르기까지. 케라스와 앙상블 레조난츠가 함께 한 이번 음악회는 음악적인 완성도 면에서도 훌륭했다. 무엇보다 청중과 교감하며 음악의 즐거움을 전파하는 그들의 순수한 열정과 음악을 향한 사랑이야말로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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