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이탈리아 韓대사관·문화원, 현지 VIP 초청 사찰음식 시식회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25일 밤(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시내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지역으로 꼽히는 베네토 거리의 그랜드팔라스 호텔.
한국 사찰음식의 대가인 정관스님이 제철음식으로 만든 채식 요리를 맛보기 위해 로마의 문화계 유력 인사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날 행사는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대사 권희석), 주이탈리아 한국문화원(원장 오충석)이 한식 보급과 진흥을 위해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을 초청해 한국의 대표적 '슬로 푸드'로 꼽히는 사찰음식을 현지 음식 분야 기자를 비롯한 문화계 주요 인사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마련한 것.
마르코 리치 이탈리아 문화부 외교보좌관, 로베르토 줄리아니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장, 피에로 코만테 로마국립호텔조리고등학교 교장 등 이탈리아 문화계 인사,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 아나이스 리 나르니 국제음악축제 예술감독 등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예술가들이 참석했다.
공영 RAI 방송의 아시아담당자인 마리아 루이사 마체이 기자를 비롯해 일메사제로, 코리에레델라세라, 아그로돌체 등 현지 주요 언론의 음식 담당 기자들도 난생 처음 경험하는 사찰 음식을 위해 기꺼이 주말 저녁에 시간을 냈다.
정관스님은 음식을 제공하기 전 "사찰음식은 수행을 하는 스님들이 절에서 먹는 일상음식으로, 깨달음을 얻으려 먹기 때문에 '수행음식'으로도 불린다. 또한, 자연에서 나는 음식을 이용하기 때문에 '자연음식', 제철음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계절음식'이라고도 한다"며 "오늘 마음과 정신을 담아서 식사를 하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오미자차와 쌀강정으로 식전 입맛을 다신 참석자들은 정성이 듬뿍 담긴 정관스님의 요리가 테이블에 차례 차례 올라올 때마다 정갈한 모습과 소박한 맛에 연신 탄성을 터뜨렸다.
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음식을 살피고, 진지하게 맛을 음미하면서 그릇을 속속 비워 나갔다.
이날 준비된 메뉴는 4년 발효한 솔잎차, 흑임자청태죽, 매실장아찌, 수삼튀김, 감자전, 연근초절임, 애호박찜, 표고버섯 조청조림, 채소겉절이, 올방개·도토리묵, 차조밥, 능이버섯국, 배추김치, 토마토 장아찌, 감말랭이무침, 더덕잣무침, 취나물 등이었다.
취나물은 정관스님이 수행지인 전남 장성 백양사 주변에서 손수 채취했다. 스님은 매실장아찌와 토마토 장아찌, 감말랭이 등도 재료를 직접 말려 손수 담근 간장, 된장 등을 이용해 간결하게 조리해 내놨다.
후식으로 제공된 연꽃차, 감자부각, 김부각을 마지막으로 무려 20여 가지의 채식 요리로 이뤄진 황홀한 마라톤의 종착역에 닿은 참석자들은 큰 박수로 정관스님과 스님을 도와 음식을 준비해 준 요리사들에게 감사를 표현했다.
정관스님은 "발우공양 등 사찰음식은 자연친화적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그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는 '빈 그릇 운동'이기도 하다"며 "여러분이 그릇을 싹싹 비우는 것을 보고, 마음이 너무 흡족하다"고 화답했다.
정관스님은 이어 "음식을 통해 오늘 동양과 서양, 한국과 이탈리아가 하나가 되는 것을 목격했다"며 "사찰음식을 매개로 여러분들이 한국 문화와 한국의 정신을 함께 느끼는 자리가 됐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8년 전부터 채식주의자가 됐다는 소프라노 조수미는 "사찰음식이 어떤 건지 너무너무 궁금했는데, 오늘 다양한 채식 요리를 맛보면서 '낙원'을 경험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마체이 RAI 기자는 "음식을 먹을 때 눈을 감고, 마음을 여니 마치 호젓한 절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리카르도 잔니 그랜드팔라스호텔 총괄 셰프는 "이탈리아에서도 최근 발효음식이 유행하고 있는데, 김치와 장류를 핵심으로 하는 한국 사찰음식을 우리 호텔에서 조리하고, 맛보는 날이 와 꿈만 같다"며 "앞으로 이탈리아 내에 한국음식이 더 많이 전파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탈리아에서는 채식주의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채식주의자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터라 한국 사찰음식을 파는 식당이 문을 열면 반응이 좋을 것이라는 의견도 이날 참석자 가운데에서 제시됐다.
참석자 중 일부는 아울러, 음식뿐 아니라 한국 승려들의 일상은 어떠한지, 한국의 불교가 태국 등 다른 아시아 지역 불교와 다른 점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등 한국의 불교 문화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ykhyun1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