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서 아버지 빼라" 호소 외면한 日…합사취소訴 원고패소(종합)

입력 2019-05-28 19:35  

"야스쿠니서 아버지 빼라" 호소 외면한 日…합사취소訴 원고패소(종합)
도쿄지방재판소, 한국인 야스쿠니 합사취소 소송서 유족들 주장 기각
5년7개월 끌었던 소송, 판결문 낭독에 '5초'…판결 이유 설명 없어
유족들 "일본이 죽인 아버지, 왜 일본의 신이 돼야 하냐" 오열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제 침략전쟁의 상징인 야스쿠니(靖國)신사에 합사된 한반도 출신 군인·군속들을 합사에서 빼달라며 유족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일본 법원이 원고인 유족들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도쿄지방재판소(법원)은 28일 합사자 유족 27명이 지난 2013년 10월 22일 제기한 2차 야스쿠니 합사 취소 소송서 원고의 요구를 기각했다.
이날 판결은 소송을 제기한 지 5년 7개월만의 긴 시간이 흐른 뒤 나온 것이지만, 재판부가 판결을 읽어내리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5초 정도였다.
재판부는 "원고들의 모든 요구를 기각한다. 소송 비용은 원고 측이 부담한다"는 짧은 판결만 내 놓은 채 판결 이유도 밝히지 않고 판사석에서 일어났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재판부는 합사가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원고측의 주장을 "합사 사실이 공표되지 않기 때문에 (합사됐다는 것이) 불특정 다수에 알려질 가능성이 없다"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고측은 일본 정부가 전몰자의 정보를 신사에 제공한 것이 종교활동을 금지한 헌법에 위반된다며 일본 정부에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요구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야스쿠니신사는 정보제공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합사하고 있다"는 이유를 대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야스쿠니신사는 근대 일본이 일으킨 크고 작은 전쟁에서 숨진 사람들의 영령을 떠받드는 시설로,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한 246만6천여명이 합사돼 있다. 실제로 위패와 유골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합사자 명부만 있다.
이 신사에는 조선인들은 2만1천181명도 함께 합사돼 있다. 이역만리 낯선 땅에 강제로 끌려왔다가 억울하게 죽은 뒤 이곳에 합사돼 전범들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종교 시설일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야스쿠니신사는 제국주의 일본군 군복과 전범기인 욱일기를 든 극우 인사들이 정치적 주장을 펼치는 제국주의 일본의 상징이다.


원고 중 한명인 박남순(76)씨는 이날 판결 후 도쿄지방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버지를 일본에 빼앗기고 고아처럼 살았다"며 "일본은 아버지를 빼앗은뒤 죽여놓고 자기네 마음대로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 아버지가 언제 일왕을 위해 돌아가셨냐. 왜 지금도 일본의 신이 돼야 하느냐"며 "우리가 살아온 인생을 알면 이런 판결을 내릴 수는 없다.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야스쿠니신사에서) 하루 빨리 빼달라"고 오열했다.
다른 원고인 이명구(81)씨는 "일본 사람들이 아버지를 야스쿠니 신사에 모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라는데 왜 그래야 하냐"면서 "아버지를 야스쿠니 신사에서 꼭 빼내고 싶다"고 눈물을 흘렸다.
원고측 오구치 아키히코(大口昭彦) 변호사는 "재판부가 자신이 원고들과 마찬가지 상황에 처했다면 이런 판결을 내릴 수는 없다"며 "오늘 판결로 이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앞으로도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유족들은 일본과 한국 시민단체와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지난 2007년부터 합사 취소를 요구하는 싸움을 일본 법정에서 벌이고 있다.

1차 소송에서는 원고가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했고, 이후 더 많은 유족이 모여 2차 소송을 제기해 이날 1심 판결이 나왔다.
원고측은 이날 판결 후 성명을 내고 "일본 사법부의 부당한 판결을 강력히 규탄하며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해방 74년이 지난 오늘까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에 강제로 동원돼 억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이 침략신사 야스쿠니에 전쟁범죄자들과 함께 합사되어 있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신사가 가족의 이름을 이용하고 그 명예와 자존을 짓밟고 있는 현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주저 없이 상급재판소에 항소할 것이며, 유엔 인권기구 등 국제사회에 호소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bk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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