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결례·대사 갑질 논란 등 기강해이 지적에 '경종' 분석도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외교부가 한미 정상 간 통화내용을 유출한 혐의로 현직 외교관과 국회의원을 고발하기로 한 것은 그만큼 이번 사태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외교부는 28일 3급 비밀을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에게 유출한 주미대사관 간부급 직원 K씨와 이를 바탕으로 외교 기밀을 언론에 공개한 강 의원을 형사고발 하겠다고 밝혔다.
'공무원의 직무관련 범죄고발지침'에 따라 외교부는 소속 공무원의 범죄사실 혐의를 발견하면 형사고발을 의무적으로 해왔으나, 외교 기밀을 누설한 직원에 대해 처벌을 요청한 전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현직 의원에 대한 고발 역시 근래에 보기 드물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한미정상이 나눈 대화가 외부로 유출된 게 알려지면서 양국 신뢰 관계가 무너질 수 있고, 나아가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중재·조정 역할을 자처하는 한국 외교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읽힌다.
더욱이 통화내용 유출 의혹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다음 달 말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을 방문하는 시점을 앞두고 사실로 확인돼 외교부로서는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이번 사태와 관련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적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한미 외교 당국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번 강경 대응에 대해 현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를 미국, 일본 등 다른 나라와 외교보다 북한과 대화를 중시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반발하는 일부 외교관들의 일탈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강경화 장관이 지난 25일 이번 유출 사태와 관련해 "의도가 없이 그랬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언급한 것을 두고 K씨가 정부에 반발하는 차원에서 통화내용을 야당 의원에게 유출했다고 보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K씨 측 법률대리인은 이날 배포한 설명자료에서 "잘못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도를 가지고 강 의원에게 비밀을 누설한 것은 아니라는 점만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28일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개최한 긴급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에 참석, "K외교관이 앞서 2차례 외교기밀 유출을 해 총 3차례 기밀을 유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취지로 보고했다.
여기에다 최근 본부에서는 외교 결례 실수가 잇따르고, 재외공관에서는 대사들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불거지는 등 외교부 기강이 해이해질 대로 해이해졌다는 판단에 직원들에게 경종을 울리겠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외교부는 지난 4월 주최한 한-스페인 차관급 전략대화에 구겨진 태극기를 세워놓고, 영문 보도자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국가 이름을 잘못 표기하는 등 실수가 잇달았다.
김도현 주 베트남 대사는 청탁금지법을 위반한 혐의로 소환돼 징계를 앞두고 있으며, 도경환 주 말레이시아 대사도 직원들에게 폭언한 의혹 등으로 중앙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정재남 주 몽골 대사는 한국 비자를 발급해주는 브로커와 유착관계에 있다는 의혹, 대사관 직원들에게 '갑질'을 했다는 의혹 등이 지속해서 제기돼 외교부가 감사에 착수했다.
한편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외교부 출신 이종헌 전 청와대 의전비서실 행정관이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에게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록을 보여줬다가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은 바 있으나 고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에는 외무부가 전문을 유출한 혐의로 최승진 당시 뉴질랜드 부영사와 이를 건네받고 언론에 공개한 민주당 권노갑 의원을 고발했다. 당시 전문은 최씨가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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