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영부터 임군홍까지…잊힌 근대미술가 6인 불러내다(종합)

입력 2019-05-29 17:02  

정찬영부터 임군홍까지…잊힌 근대미술가 6인 불러내다(종합)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서 근대작가 본격 재조명…1부 '절필시대' 개막
현대미술가 정종여作 6m 괘불 전시…여성 스타작가 정찬영 세밀화 첫 공개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윷판이 벌어졌다. 멍석 주변에는 노인 셋이 쪼그려 앉았다. 마지막 윷이 한껏 비상했다가 떨어지려는 참이다. 그 움직임을 좇느라 눈을 희번득 치켜뜬 오른쪽 노인 표정이 실감 난다.
29일 서울 국립현대미술관(MMCA) 덕수궁에 걸린 화가 백윤문(1906∼1979)의 그림 '건곤일척(乾坤一擲)'이다. 그는 1939년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이 작품을 냈다. 운명을 건 승부를 차분하지만 강렬하게 그려낸 작업은 특선을 차지했다.
백윤문은 스승인 이당 김은호와 함께 순종 초상을 그릴 정도로 일찌감치 실력을 인정받았다. 선전에는 '건곤일척' 같은 풍속인물화를 자주 냈지만, '죽림칠현도'처럼 전통 미의식을 보여주는 작업에도 뛰어났다.



일제강점기 화단의 스타였던 백윤문이 존재감이 희미해진 것은 1942년 병으로 쓰러져 화업을 중단한 탓이 크다. 그는 35년 뒤에야 겨우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붓을 잡았지만, 1979년 봄 세상을 떠났다.
백윤문은 다음 날 개막하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근대미술가의 재발견1: 절필시대' 주인공 6명 중 하나다. 백윤문을 비롯해 정찬영(1906∼1988), 정종여(1914∼1984), 임군홍(1912∼1979), 이규상(1918∼1967), 정규(1923∼1971) 모두 대중에게 친숙한 미술가는 아니다.
덕수궁관은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근대작가를 '근대미술가의 재발견' 정기 전시를 통해 매회 4명 정도씩 소개한다는 구상이다.
이번 전시는 이들 여섯 작가가 자의 혹은 타의로 붓을 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관점에서 '절필시대'로 이름 지었다. 회화, 판화, 도자 등 작품 134점과 아카이브 128점이 나왔다.



채색화로 이름을 날린 '규수화가' 정찬영이 남편인 식물학자 도봉섭과 작업한 식물세밀화도 처음 공개된다.
정찬영 식물세밀화를 활용한 여러 식물서도 함께 나왔다. 1950년 간행된 '한국식물도감'(정태현 저)이 최초 한글식물도감으로 알려졌지만, 도봉섭과 심학진이 1948년 펴낸 '조선식물도설: 유독식물편'이 이보다 앞섰다는 게 미술관 설명이다.
정종여가 월북 전인 1938년 제작한 '진주 의곡사 괘불도'(등록문화재 제624호)는 덕수궁관 중앙에 걸렸다. 화승이 아닌 현대미술가가 사찰 괘불을 그린 것은 이례적인 데다, 농담을 표현한 동양화풍 작업은 일반 불화와는 뚜렷이 구분된다.
정종여는 북한에서도 성공한 예술가로 자리매김했으나, 일제강점기 전쟁화 출품 등의 행적으로 여전히 논란의 인물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에 "해방 후 한국화단의 고답적인 전통 화풍을 탈피하고, 민족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산수와 인물 풍속을 개척한 점에서는 주목할만하다"라고 평가했다.



전시는 1948년 김환기·유영국과 '신사실파'를 결성하며 현대 추상화 1세대로 활동한 이규상의 작업 활동도 최대한 복원한다.
이밖에 중국에서 광고업체를 운영하면서 자유로운 화풍의 풍경화 작업을 한 임군홍, 후반기 세라믹 벽화에 몰두한 정규 작업을 만난다.
근대미술에 정통한 윤범모 관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제가 20, 30년 전에 개인도록을 만들어 소개하거나 작품 소재지를 새롭게 확인한 작가가 많다"라면서 "그런 작품 중 다수를 전시하게 돼 오늘이 제 생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라고 밝혔다.
전시는 9월 15일까지. 관람료는 2천 원이다.
전시와 연계해 '한국 근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형학'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도 9월 7일 열린다.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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