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칸영화제 강력한 남우주연상 후보였다"

입력 2019-05-29 13:42   수정 2019-05-29 15:36

"송강호, 칸영화제 강력한 남우주연상 후보였다"
"폐막식 때 허들 넘는 느낌…마지막까지 서스펜스"
"아카데미 진출? 복잡한 절차 거쳐야…안돼도 실망 안 해"
"한국과 미국서 차기작 각각 한편씩 준비 중"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영화 '기생충'으로 지난 25일(현지시간) 폐막한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이 수상 후일담을 전했다.
29일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봉 감독은 "시상식 때 마지막까지 서스펜스가 있었다"고 떠올렸다.
통상 칸영화제 측은 폐막 당일 정오쯤 상을 받을 팀에게 어떤 상인지는 밝히지 않고 폐막식에 참석하라고 미리 공지한다. 또 여러 경로를 통해 폐막식 참석자 리스트가 돌기도 한다.
봉 감독은 "사전에 연락을 받았다"면서 "(유력한 수상 후보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명단에 없는 것을 알고, 제가 어떤 상이든 타겠구나 예상은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타란티노 감독 부부는 뜻밖에 폐막식 레드카펫에 모습을 드러냈고, 마지막 황금종려상만 남을 때까지 봉 감독과 함께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하나하나 상이 발표될 때마다 마치 허들을 넘는 기분이었죠. (2등 상 격인) 심사위원대상 발표가 끝나고, 저랑 타란티노 형만 최후에 남았죠. 그래서 서스펜스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하하.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타란티노 감독과 홍보담당자 간에 의사소통에 혼선이 빚어져 (상을 탈 줄 알고) 폐막식에 참석했다고 해요."


봉 감독은 수상 이후 축하 리셉션에 참석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봉 감독은 심사위원단에 둘러싸여 축하와 질문 공세를 받았다고 한다.
특히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심사위원장은 '기생충' 속 공간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기생충'에는 넓은 정원과 거실이 있는 부잣집과 벌레가 나오는 허름한 반지하 집이 명확하게 대비를 이루며 주제 의식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이냐리투 심사위원장이 저더러 어떻게 그렇게 완벽한 집을 골랐냐고 묻길래, 모두 세트라고 답하니까 엄청 놀라시더라고요. 심사위원인 배우 엘르 패닝은 배우들에 대한 찬사를 많이 했어요. 비록 한국어를 모르고 자막으로 영화를 봤지만, 배우들의 표정이나 리듬감에 탄복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냐리투는 '송강호가 강력한 남우주연상 후보 중 한명이었는데, 작품 자체가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으로 결정되는 바람에 남우주연상을 줄 수 없어 아쉬웠다'고 하더라고요." 칸영화제는 3등격인 심사위원상부터는 남녀 주연상을 겸해서 줄 수 없게 돼 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송강호의 반응이 궁금했다. 봉 감독은 "강호 형님이 너무 기쁘고 좋지만, 우리 영화를 남우주연상이라는 카테고리에 가두기는 너무 아깝지 않으냐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봉 감독과 송강호는 영화 '살인의 추억'(2003)으로 만나 '괴물'(2006), '설국열차'(2013)에 이어 '기생충'까지 네 작품에서 함께했다. 봉 감독은 "강호 형님은 작품 자체의 성격이나 느낌을 규정짓는 힘이 있다"고 평가했다.
"제 영화에는 기이하거나 독특한 상황이 많습니다. 범인을 못 잡고 끝낸다거나, 한강에서 괴물이 나오는데 강호 형님은 그런 것을 관객이 믿게끔 만들죠. '기생충' 역시 예상치 못한 전개로 흘러가고, 클라이맥스 때 폭발하는 감정도 흔히 봐왔던 감정이 아닌데, 그런 것을 믿게 만듭니다. 공격적으로 표현하면 관객을 제압하는 능력을 지녔죠. 그런 능력은 제 시나리오 작업에도 영향을 미쳐, 운신의 폭을 넓게 합니다. 강호 선배라면 이런 대목을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죠."


'기생충'에는 젊은 세대에 대한 감독의 시선이 담겼다. 전원이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가장 기우 역을 맡은 최우식은 요즘 젊은이들의 고달픈 초상을 대변한다. 최우식은 마지막 기우의 심정을 담은 엔딩곡 '소주 한잔'을 직접 불렀다. 정재일 음악 감독이 작곡한 멜로디에 봉 감독이 직접 가사를 쓴 곡이다.
봉 감독은 "영화가 끝나도 기우가 계속 살아가는 느낌이 들게 가사를 썼다"면서 "18만원을 내고 작사가협회에 등록도 했다. 혹시 노래방에 가거든 많이 불러달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기생충' 속 인물들은 선과 악으로 명확히 나뉘지 않는다. 봉 감독은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나쁜 모습이 뒤범벅돼 있다"면서 "그런 결이 있어야 인물들의 사실적인 느낌이 살아날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그는 "명백한 의도나, 악당이 없는데도 파국이 생기는 것은 우리 내면에 깔린 두려움, 불안감을 반영한 것"이라며 "뉴스에서 보는 각종 사건·사고, 증오범죄, 이해할 수 없는 묻지 마 범죄 등은 우발적으로 폭발하지만, 그 우연성의 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켜켜이 쌓여있는 에너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봉 감독은 '기생충'이 내년 미국 아카데미상 후보에 진출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데 대해 "아카데미상은 크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서 "잘 되면 기쁘고 좋지만 안됐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봉 감독은 아카데미상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미국 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그 누구보다 아카데미상 절차를 잘 안다. "5천~7천명이 투표권을 가지는데, 마치 지방자치단체 선거 운동과 비슷한 과정을 거칩니다. 각 스튜디오도 전담팀을 만들어 각종 자료와 DVD를 투표권자들에게 뿌리죠. 제게도 해마다 10월쯤 되면 극장 개봉도 안 한 영화들의 DVD가 배달됩니다." 전날 뉴욕타임스는 "한국영화가 아카데미에 진출한 적은 없다"면서 "'기생충'은 너무 강력해서 이 영화 배급사 '네온'만 제대로 한다면 감독상과 각본상 후보에 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봉 감독은 차기작에 대해 미국과 한국에서 각각 한편씩, 총 2편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저한테는 '마더'나 '기생충' 같은 정도 규모의 영화가 맞는 것 같아요. 미국으로 치면 200억~300억원 수준의 영화를 스튜디오와 이야기 하고 있고, 한국에서는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사건을 다룬 영화를 준비 중입니다. 공포나 호러 장르로 구분할 것은 아니고요. 제가 2000년대 중반부터 구상해온 작품입니다."
그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와 협업 가능성에 대해 "저에게 최종본 편집권을 준다면 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면서 "할리우드에서는 크리스토퍼 놀런이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정도만 최종 편집권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기생충'이 30일 개봉하면 변장을 하고 극장을 찾아 관객의 반응을 직접 살필 계획이다. 어떤 변장을 할 것이냐 묻자 "말할 수 없다"며 웃었다.
fusionj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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