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봉준호 월드의 최정점에 있는 작품"
칸 레드카펫 밟을 때마다 상 받아…'수상 요정' 별명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봉준호 감독과 처음 만난 뒤 '뭐가 돼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29일 오후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마주한 배우 송강호(52)는 20여 년 전 봉 감독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극 무대에 주로 선 송강호가 영화 '초록물고기'로 대중에 얼굴을 알리던 시기였고, 봉 감독은 영화 '모텔 선인장'의 각본과 조연출을 맡았을 때다.
"봉 감독이 '초록물고기'를 보고 팬 입장에서 저를 만나보고 싶다고 해서 그 당시 마포에 있던 영화사 사무실에 잠시 들렀어요. 그때 미래의 거장이 될 봉준호, 장준환 감독, 두 분이 까까머리를 하고 대학생 같은 느낌으로 앉아있었죠. 두 사람이 '모텔 선인장' 연출부라는 것은 나중에 들었어요. 그때 차를 마시고 헤어졌는데, 봉 감독이 나중에 '삐삐'에 녹음을 남겼어요. 나중에 좋은 작품이 있으면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는데, 정중함과 진심 어린 존중, 예의 바름이 물씬 묻어났죠. 그 녹음을 공중전화에서 듣고, 크게 감동했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진심 어린 태도에서 '나중에 뭐가 돼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죠."
송강호의 예상대로 봉 감독은 20여년 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거장이 됐고, 그는 거장의 페르소나가 됐다.
송강호는 봉 감독과 영화 '살인의 추억'(2003)부터 '괴물'(2006), '설국열차'(2013)에 이어 '기생충'까지 네 작품을 함께했다. 누구보다 봉 감독 작품세계를 잘 아는 그는 '기생충'이 '봉강호 월드' 최정점인 영화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봉준호의 페르소나라는 수식어에 대해선 "과분한 칭찬"이라며 자신을 낮췄다.
'믿고 보는 배우' 송강호는 '기생충'에서도 입체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그가 맡은 배역은 생활고 속에서도 돈독한 가족애를 지닌 4인 가족의 가장 기택이다. 직업도, 대책도 없어 아내 충숙(장혜진)에게 늘 잔소리를 듣지만 매사 긍정적이다. 아들 기우(최우식)가 부잣집 과외선생이 되자 삶의 희망을 품어보지만, 모든 것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초반에 평범한 가장 역을 우화처럼 연기하지만, 클라이맥스에서는 감정을 폭발시킨다.
송강호는 "이 작품은 장르 영화의 틀을 갖고 있지만, 혼합장르여서 덜컹거리지 않게 유연하게 연기하는 것이 중요했다"면서 "열심히 살아왔지만,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도 적응하는 기택을 연체동물처럼 유연하게 파고들려고 했다"고 떠올렸다.
송강호는 "세상에 절대 선악이 없는 것처럼 기택 역시 선인도, 악인도 아닌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며 "초반과 중후반 이후 감정의 흐름도 변화나 각성보다는 환경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택시운전사' '마약왕' 등에서 단독으로 극을 이끈 송강호는 '기생충'에서는 이선균·조여정·최우식·박소담·장혜진 등 후배 배우들과 앙상블을 이뤘다. 모두가 주인공으로 느껴질 만큼 누구 하나 뒤처지는 배우들이 없다.
송강호는 "봉준호라는 거대한 산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니까 어떤 연기를 해도 다 받아줄 것 같았다"면서 "다른 좋은 배우와 협업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고 회상했다.
송강호는 이번 칸영화제에서 '유력한 남우주연상 후보였다'는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심사위원장의 말을 봉준호 감독에게 전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상을 안 받아서 정말 다행"이라며 "상은 하나밖에 안 주는데, 당연히 황금종려상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송강호는 '수상 요정'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2007년 '밀양'(여우주연상), 2009년 '박쥐'(심사위원상)에 이어 '기생충'(황금종려상)까지 그가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을 때마다 모두 상을 받은 덕분이다. 그는 "'천만 요정'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수상 요정'은 처음 들어본다"며 활짝 웃었다.
송강호는 오는 7월에는 영화 '나랏말싸미'로 관객을 찾는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과 그와 함께한 사람들 이야기를 그린 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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