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으로 사라진 임진강 진서문 규모 드러났다

입력 2019-05-30 11:51   수정 2019-05-30 15:59

한국전쟁으로 사라진 임진강 진서문 규모 드러났다
길이 7.4m·너비 4.5m 확인…"조선시대 성문 중 대형"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시대에 많은 문인과 사신이 찾았으나 한국전쟁으로 1953년 무렵 소실된 경기도 파주 임진진 진서문(鎭西門)의 정확한 규모가 확인됐다.
파주시와 매장문화재 조사기관 한백문화재연구원(원장 서영일)은 지난 3월 시작한 임진나루와 임진진터 발굴조사를 통해 문 길이가 7.4m, 너비가 4.5m라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30일 밝혔다.
임진나루는 임진강 남쪽에 설치한 강변 시설로, 북쪽 장단나루와 함께 교통 요지로 꼽혔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종 18년(1418) 2월 "어가(御駕)가 임진나루 북쪽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고,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한양을 떠나 북녘으로 피신하면서 한밤중에 빗속에서 임진나루를 건넜다고 전한다.
임진나루에는 영조 때인 1755년 군진인 임진진이 설치됐고, 나루 안쪽 협곡을 가로지르는 성벽을 쌓으면서 낸 문이 진서문이다. 석조 홍예 위에 지은 목조 누각은 임벽루(臨壁樓)라고 불렀다.
진서문 모습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있는 '경강부임진도'와 김홍도 아들 김양기가 그린 '임진서문'(臨津西門)에 잘 남았다.



서영일 한백문화재연구원장은 "2015년 시굴조사 이후 4년 만에 진행한 발굴조사로 진서문 흔적과 성벽 일부가 나타났다"며 "진서문 규모는 조선시대 성문 중 대형에 속하는데, 그만큼 임진나루와 임진진 위상이 높았다고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진서문터에서는 홍예를 받친 기초석, 통로에 깐 대형 보도석, 커다란 측벽석이 출토됐다. 또 문을 설치하기 위해 기둥 구멍을 낸 문확석 2기, 문지방석도 발견됐다.
연구원 측은 "진서문은 문짝을 안쪽으로 여닫는 형태였다"며 "동쪽 측벽은 배수로 공사 과정에서 일부 사라졌지만, 서쪽 측벽은 약 1단 정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진서문 통로부 안쪽과 성문 서쪽 측벽으로 유적이 연결되는데, 이에 대해 추가 조사를 해야 한다"며 "보도와 접안시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진서문 외부도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연구원은 이번에 임진진 전체 범위를 측정하기 위한 지표조사도 시행했다.
이를 통해 임진리 마을 주변에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기왓조각이 흩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임진나루 안쪽 옛길 주변 공터에서는 고려시대 기와를 집중적으로 출토했다.
파주시 관계자는 "고려시대에도 임진나루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시설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정비·복원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