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실패로 리더십 흠집…또 시험대 선 이스라엘 네타냐후

입력 2019-05-30 16:47  

연정실패로 리더십 흠집…또 시험대 선 이스라엘 네타냐후
다음 총선 승리 불투명…리에베르만 전 국방장관과 적으로 돌아서

(카이로=연합뉴스) 노재현 특파원 = 이스라엘의 '스트롱맨'(철권통치자)으로도 불려온 베냐민 네타냐후(69) 총리가 새 연정 구성에 실패하면서 체면을 잔뜩 구겼다.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는 30일(현지시간) 의회 해산 및 새 총선 실시안을 74대 45로 가결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연정 구성 시한인 전날 자정까지 협상을 타결하지 못하자 집권당 리쿠드당 주도로 오는 9월 조기 총선을 치르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상 연정 구성 실패로 불과 몇개월 사이에 총선을 두 차례 치르는 것은 처음이라고 외신이 전했다.
당초 네타냐후 총리가 연정을 꾸리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은 지난 4월 9일 치러진 총선에서 전체 120석 가운데 35석을 확보하면서 다수당 지위를 유지했다.
이 때문에 레우벤 리블린 대통령에 의해 차기 총리 후보로 지명된 네타냐후 총리가 무난히 5선에 성공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리쿠드당이 유대교 정당 등 우파 정당들과 손잡으면 의회의 과반인 65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또 네타냐후 총리가 연정 구성에 성공하면 올해 7월 초대 총리인 다비드 벤구리온 초대 총리(13년 5개월 재임)를 제치고 이스라엘 역사상 최장수 총리에 오를 수 있었다.
네타냐후 총리의 발목을 잡은 것은 유대교 신자들의 병역 논란 문제다.
아비그도르 리에베르만(60) 전 국방장관의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이 네타냐후 총리에게 연정 합류 조건으로 초정통파 유대교 청년들에 대한 병역의무 법안을 내걸었다.
의회에서 5석을 확보한 '이스레엘 베이테누당'이 합류하지 못하면 보수 정당들의 연합은 60석으로 과반 의석에 1석이 모자라 연정 구성이 불가능하다.
리에베르만 전 장관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네타냐후 총리는 막판에 좌파 노동당에도 연정 합류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하기도 했다.
예상 밖의 연정실패로 네타냐후 총리가 다시 정치적 시험대에 선 것으로 분석된다.
네타냐후 총리는 차기 의회가 구성될 때까지 정치적 혼란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관리들에 따르면 새 총선에 드는 비용은 1억3천만 달러(약 1천500억원)나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네타냐후 총리는 일단 보수 정당의 유력한 지도자로 지위를 유지할 공산이 커 보인다.
최근 현지 언론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당장 총선이 치러지더라도 집권 리쿠드당이 다수당을 차지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총선이 다시 치러지기 전까지 석 달 반 동안 변수가 많아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운명을 예단하기 쉽지 않다.
우선 그를 둘러싼 부패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2월 말 이스라엘 검찰은 네타냐후 총리를 뇌물수수와 배임 및 사기 등 비리 혐의로 기소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수년간 할리우드 유명 영화제작자 아논 밀천과 호주 사업가 제임스 패커 등으로부터 샴페인과 시가 등 26만4천달러 상당(약 3억원)의 선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일간지 예디오트 아흐로노트 발행인과 막후 거래를 통해 우호적인 기사를 대가로 경쟁지 발행 부수를 줄이려고 한 혐의도 있다.
지난 25일 이스라엘의 지중해 도시 텔아비브에서는 네타냐후 총리의 기소 면제에 반대하는 대규모 군중 시위가 야당 주도로 열렸다.
최근 일부 리쿠드당 의원들이 국회의원에 대한 기소를 면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데 대한 반발이었다.
여기에 미국의 중동평화안 발표 계획 등 향후 중동 정세가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로이터통신은 리쿠드당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내부 분열을 겪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네타냐후 총리는 연정 무산의 책임을 리에베르만 전 장관에게 돌리면서 위기를 모면하려는 모양새다.
네타냐후 총리는 30일 "아비그도르 리에베르만은 이제 좌파의 일원"이라며 "그(리에베르만)는 우파 정부를 무너뜨렸다. 그를 다시 믿지 말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강경 보수파 정치인으로 협력해온 네타냐후 총리와 리에베르만 전 장관은 적(敵)으로 돌아서게 됐다.
옛 소련 몰도바 태생의 유대인인 리에베르만은 1993년부터 리쿠드당 사무국장으로 네타냐후와 일했고 1996년 네타냐후가 총리로 첫 임기를 시작할 때 총리실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리쿠드당을 탈당한 뒤 1999년 러시아계 이주 유대인의 지지를 기반으로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을 창당했지만, 네타냐후의 우파 연정에서 외무장관, 국방장관 등을 역임하며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리에베르만은 최근 7개월 사이 연립정부의 위기를 잇달아 불러오며 네타냐후 총리와 악연을 쌓았다.
리에베르만은 작년 11월 중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휴전한 것을 비판하면서 국방장관직에서 사임했다.
이후 연립정부가 붕괴 위기에 직면하자 네타냐후 총리는 작년 12월 조기 총선 카드를 수용했고 올해 4월 총선이 실시됐다.


noj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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