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은폐·왜곡으로 보긴 어렵지만 '정의로움' 충족 못시켜"
'용역업체와 유착' 수사 미진·유족 동의 없는 부검 지휘도 지적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2009년 1월 용산참사 당시 경찰이 무리한 진압과정을 펼쳤는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소극적이고 편파적이었다는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결론이 나왔다.
과거사위는 대검찰청 산하 진상조사단으로부터 용산참사 사건 조사결과를 보고받은 뒤 31일 이 같은 내용의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사건 관련 철거민들과 유족들에 대한 사과를 검찰에 권고했다.
용산참사는 2009년 1월 19일 철거민 32명이 재개발 사업 관련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빌딩 옥상에 망루를 세우고 농성하던 중 경찰 강제진압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경찰관 1명과 철거민 5명이 숨진 사건이다.
과거사위는 화재 가능성 등을 충분히 예상하고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채 졸속으로 진압작전을 강행한 경찰지휘부에 대한 검찰의 수사 의지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경찰지휘부는 철거민들이 소지한 염산과 화염병 등 위험물질을 파악하고 있었고, 극단적인 돌출 행동도 우려되는 상황임을 이미 파악한 상태였다.
그러나 경찰특공대원들은 농성장에 다량의 시너 등 인화물질이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됐고, 소방차도 단 2대만 출동하는 등 화재 발생에 대한 대비가 미흡하게 이뤄졌다.
과거사위는 "당시 무리한 직업 작전을 결정·변경한 경찰지휘부에 대한 수사가 필요했음에도, 검찰은 최종 결재권자인 당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을 주요 참고인 또는 피의자로 조사할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검찰은 김 전 서울청장에 대해 서면 조사만을 한 뒤 '혐의없음' 처분을 했다. 무리한 진압 작전의 이유와 배경을 확인할 수 있는 통신사실확인자료 요청 대상에서도 김 전 청장의 개인 휴대전화는 누락됐다.
검찰 수사에 청와대 등이 개입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당시 청와대 행정관은 경찰청 홍보담당관에게 '용산 사건으로 인한 촛불시위 차단을 위해 강호순 연쇄살인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취지의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또한 철거용역업체 직원의 불법행위 및 경찰과 유착관계에 대해서도 검찰이 소극적 수사를 펼쳤다고 과거사위는 판단했다.
과거사위는 "용역업체 직원들의 불법행위 및 이에 대한 경찰의 묵인과 방조는 수사 초기 확보된 동영상 자료에서도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며 "용역업체 직원의 살수(撒水) 및 방화 행위에 대해 묵인·방조한 경찰의 위법행위(직무유기 혐의)에 대해서는 전혀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사망자들의 시신을 유가족 동의 없이 긴급부검하도록 구두 지휘한 부분, 용산참사 당시 화재를 일으켜 경찰관 등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철거대책위 관계자들의 재판에서 변호인들의 수시기록 열람·등사를 거부한 부분 등도 사건에 대한 의혹과 불신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과거사위는 "당시 검찰 수사가 기본적으로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거나 왜곡시켰다고 보긴 어렵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거리로 내쫓긴 철거민들이 요구하는 '정의로움'을 충족하기엔 부족했다고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과거사위는 철거민들의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혐의와 경찰관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에 대한 수사를 균형 있게 다루지 못한 점 등을 거론하며 "수사과정과 결과는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하며, 피의자뿐 아니라 국민에게서 그렇다고 평가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기본적인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과거사위는 유족들에게 사전통지 없이 진행된 긴급부검과 수시기록 열람·등사 거부 등에 대해 검찰이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이와 함께 수사기록 열람·등사에 관한 교육 및 제도 개선, 긴급부검 지휘에 대한 검찰 내부의 구체적 판단 지침 마련, 검사의 구두 지휘에 대한 서면 기록 의무화 등도 권고됐다.
과거사위는 이날 심의를 끝으로 약 1년 6개월간의 활동을 마무리했다.
검찰의 과거 인권 침해나 수사권 남용 사례 규명을 위해 2017년 12월 발족한 과거사위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고(故) 장자연씨 성접대 의혹 등 17건의 실체를 다시 규명하는 작업을 해왔다.
sj997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