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출신 독립운동가 노상익·상직 형제 조명한다

입력 2019-06-02 09:10  

김해 출신 독립운동가 노상익·상직 형제 조명한다
8일 학술대회 열려…"역사 속 가려진 형제 삶·사상 정립"



(김해=연합뉴스) 정학구 기자 = 경남 김해 출신으로 일제강점을 피해 서간도 망명길도 마다하지 않았고 환국 후에도 독립운동을 이어간 노상익·상직 형제를 조명할 학술대회가 열린다.
2017년과 2003년 각각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대눌(大訥) 노상익·소눌(小訥) 상직 형제의 삶과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립할 학술대회는 오는 8일 오후 2시 국립김해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김해시에서 주최하고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한문학연구소가 주관한다.
학술대회에선 성균관대 이희목 교수, 성균관대 동아시아한문학연구소 이은영 연구원, 부산대 정석태 교수, 경북대 이규필 교수 등이 주제 발표와 토론을 펼친다.
형제는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자 서간도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힘썼으며 소눌은 먼저 환국해 밀양에 자암서당을 열고 1천명이 넘는 후학을 양성했다.
소눌은 3·1 만세운동 직후 곽종석(郭鍾錫)·장석영(張錫英)·김창숙(金昌淑) 등 유림을 중심으로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을 청원하는 파리장서(巴里長書)에 제자들과 함께 김해 대표로 서명하였다가 옥고를 치렀다.
대눌은 동생 귀국 후에도 망명지에서 군자금 모집에 힘쓰며 독립운동을 이어갔으나 일제의 핍박이 심해지자 고향인 김해로 돌아와 천산재(天山齋)를 짓고 은거했다.
그는 사헌부 전적(典籍) 재임 시절이던 1894년 갑오개혁을 당하자 낙향 후 거주지를 밀양으로 옮겼다.
1906년 2월 이토 히로부미가 부산에 올 때 요주의 인물로 지목돼 영남루에 구금됐고, 경술국치 후 일제의 은사금(恩賜金) 거부로 다시 구금되기도 했다.
임원식 김해시 가야사복원과장은 "학술대회는 일제강점기 당시 대눌·소눌 형제의 항일 애국 운동 의미를 되짚어 보기 위한 것"이라며 "역사 속에 가려진 두 형제의 생애와 사상을 엿볼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b940512@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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