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총 부대로 활약해 중공군 예봉 꺾어…18명 경찰관 중 15명 사상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화랑부대는 상대 공격의 예봉을 잡았고 기관총 대원들의 영웅적인 희생은 대대 지휘본부 지역으로 진격하던 중공군을 확실하게 저지했다."
3일 경찰청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에 참전한 미국 해병 1사단 5연대 3대대장 로버트 태플릿 중령은 2002년 발간한 자신의 수기 '다크호스 식스'(Dark Horse Six)에서 한국경찰 부대인 '화랑부대'의 활약에 대해 이같이 적었다.
한국전쟁 당시 경찰은 약 1만5천명이 유엔군에 배속돼 활동했는데 유엔군 배속 경찰관 중에서도 미군에게 특별훈련을 받고 별도 편제된 경찰관들이 '화랑부대'라 불렸다.
경찰청은 현충일을 앞두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화랑부대의 활약상을 발굴해 소개했다.
태플릿 중령은 수기에서 "우리 대대 지휘본부 보호 부대가 사령부 바로 위 산등성이에서 방어를 하는 동안, 화랑부대가 몰려드는 엄청난 수의 중공군을 향해 위압적인 기관총 세례를 퍼부었다"며 "다음 날 아침 우리의 S-2 요원들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화랑부대 기관총에 죽은 적군들의 수는 200명이 넘었다"고 기록했다.
장진호 전투에서 활약한 경찰부대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내용이지만 그들의 전공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경찰청은 설명했다.
화랑부대 중에서도 미 해병 1사단 5연대에 배속된 경찰관 부대는 장진호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경찰청이 1957년 작성된 '유엔 종군기장 수여대상자 조사명부' 등을 통해 확인한 장진호 전투 참전 경찰관은 모두 18명이다. 태플릿 중령의 기록에 따르면 장진호 전투 중 경찰관 4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장진호 전투에 대한 기록은 미 해병 마틴 러스의 저서 '브레이크 아웃'(Break Out)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브레이크 아웃'에는 장진호 전투와 관련해 "전초에는 미 해병에 의해 훈련된, 군기가 있고 상당한 전투력을 가진 한국경찰 기관총 부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 해병의 통역장교였던 재미(在美) 변호사 이종연(91) 씨는 경찰청 관계자와의 면담에서 "한국경찰은 장진호 전투의 서쪽 유담리에서 전투를 했다"며 "경찰관들이 전투 전문인 해병대 군인들과 함께 싸우면서 주공격을 맡았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한국전쟁 당시 경찰이 북한지역까지 진군하는 등 정규군 못지않은 활약을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경찰 참전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6일부터 12월 11일까지 함경남도 장진 일대서 벌어진 전투를 말한다. 혹한의 추위 속에서 유엔군 3만명과 중공군 12만명이 전투를 벌여 유엔군 약 1만7천명, 중공군 약 4만8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미군 4천500여 명이 전사하고 7천500여 명이 다쳐 미군 전사(戰史)상 가장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 전투로 중공군의 남진이 지연되면서 주민 10만여 명이 흥남 부두를 통해 남한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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