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연정, 탄생 1년 만에 존폐 기로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서유럽 최초로 출범한 이탈리아 포퓰리즘 정권이 탄생 1년을 맞이한 가운데,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가 끊임없이 반목하고 있는 연립정부 내 두 정파에 최후통첩을 했다.
콘테 총리는 3일 저녁(현지시간) 로마의 총리궁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포퓰리즘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두 정당인 '오성운동'과 '동맹'이 싸움을 멈추지 않으면 총리 직에서 사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콘테 총리는 "(연정 내)두 정치 세력, 특히 두 정당의 지도자들에게 명확한 선택을 해줄 것을 요청한다. 연정의 합의를 준수하면서 일을 할 생각이 있는지를 이야기해 달라"며 "선명하고, 분명하며, 빠른 대답을 원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최대한의 결단으로 총리직을 계속 이어갈 준비가 돼 있지만, 이런 호소가 무시될 경우 여기에서 그냥 자리만 유지하고 있지 않고 물러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콘테 총리의 이날 기자회견은 작년 6월 1일 공식 출범한 포퓰리즘 연정의 두 구성원인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극우정당 동맹의 내부 갈등이 갈수록 커지고, 유럽연합(EU)이 이탈리아의 공공 재정악화에 해명을 요구하면서 사실상 징계 절차에 착수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다.
무명의 법학 교수 출신으로 1년 전 포퓰리즘 연정의 총리로 깜짝 발탁된 콘테 총리는 당적은 없지만 오성운동과 가까운 것으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연정을 구성하는 두 정당의 중재 역할을 자임하고 있으나 오성운동의 대표인 루이지 디 마이오 부총리 겸 노동산업장관, 동맹을 이끌고 있는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 등 두 실세 부총리의 위세에 밀려 내각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콘테 총리는 지난 주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오성운동과 동맹의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진 가운데, 연정 내 분열이 해소돼 신뢰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정부를 지속하는 게 더 이상은 불가능하는 판단 아래 자신의 직을 걸고 오성운동과 동맹에 최후 통첩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지 기반도, 철학도 워낙 달라 출범 전부터 지속적인 연대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돼 온 오성운동과 동맹은 지난 1년 동안 난민정책, 대형 토목 공사, 북부의 자치권 확대, 세금 인하 등 핵심 정책을 둘러싼 이견으로 끊임없이 반목해 왔다.
이런 와중에 EU 집행위원회는 EU와의 약속과는 달리 작년에 이탈리아의 공공부채가 늘어난 것을 문제 삼으면서 지난 달 29일 이탈리아 정부에 해명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는 EU의 재정 규약을 어긴 책임을 물어 수십 억 유로의 과징금을 매기는 절차에 사실상 착수한 것으로 해석된다.
조반니 트리아 이탈리아 재무장관은 작년에 세계 경기가 예상보다 크게 둔화한 탓에 국가부채가 늘었다고 설명하면서, 내년 예산에서는 EU의 규정을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으나, EU가 이런 해명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이다.
이탈리아 정부가 이처럼 어느 때보다 일치된 목소리가 요구되는 시점에 놓인 상황이기 때문에 콘테 총리가 자리를 거는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날도 살비니 부총리는 "회원국의 재정지출을 제한하는 EU의 규정은 실업률과 연계시켜야 한다. 실업률이 5%로 떨어지면 EU의 모든 제한을 존중할 것이지만, 청년 실업률이 50%가 넘는 지역도 존재하는 이탈리아에서는 재정지출에 제한을 둬서는 안된다"며 EU의 현행 규정에 재차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이탈리아의 현재 실업률은 약 10% 선으로, EU 내에서 그리스 등에 이어 상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콘테 총리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두 정당이 갈등을 봉합하지 못하면 포퓰리즘 연정은 결국 붕괴 수순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이 내달 하순 의회를 해산하고, 오는 9월 29일에 조기총선이 실시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현지 언론은 보고 있다.
조기총선이 현실화하면 살비니 부총리의 강경 난민 정책을 앞세워 거침없는 상승세를 타고 있는 동맹의 승리가 유력할 것으로 점쳐진다.
작년 총선 때 17%의 표를 얻었던 동맹은 지난 달 하순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34%가 넘는 표를 얻어 일약 이탈리아의 최대 정당으로 올라섰다.
반면, 작년 총선 때 32%가 넘는 표를 얻어 창당 9년 만에 단숨에 최대 정당이 된 오성운동은 지난달 26일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17%에 그치는 저조한 득표율로 중도좌파 민주당에조차 밀려 3위로 전락했다.
조기총선 이후 들어설 새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당장 내년 예산안 편성이라는 과제를 안게 된다.
이탈리아의 공공부채 증가를 둘러싼 EU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국면이라 EU와의 충돌은 필연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그 과정에서 이탈리아의 금융 시장이 다시 불안에 빠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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