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액티브] 낙태 헌법불합치 결정에도 학교에선…

입력 2019-06-16 07:00  

[인턴액티브] 낙태 헌법불합치 결정에도 학교에선…
헌재 결정 두달 지났지만…교육부 "성교육 내용 개정 계획 없어"

(서울=연합뉴스) 조성미 기자 황예림 이세연 곽효원 인턴기자 =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고등학교의 성교육 수업에서는 여전히 임신중절수술의 불법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다뤄지고 있다. 헌재 결정 이후 낙태죄 폐지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해도 학교 성교육에서 임신중절을 다루는 시각도 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아직 교육 당국의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연간 15시간 이상의 성교육을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초·중학교에서는 낙태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성에 대해 깊게 배우는 고등학교 성교육 과정에서 임신중절수술의 의미와 부작용, 중절에 대한 대안으로 피임법이나 출산 뒤 입양 등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고교에 제공되는 표준화된 성교육 수업 자료엔 여전히 낙태의 불법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남아 있다. 2015년 만들어진 국가 성교육 표준안에 따라 울산광역시교육청이 2016년 작성한 고등학교 성교육 수업 자료는 인공 임신중절수술에 대해 '형법에서는 낙태를 예외 없이 위법으로 간주한다', '불법 시술을 한 의료인은 형법에 의해 처벌을 받으나 이 때문에 오히려 더욱 음성적으로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또 인공 임신중절수술의 부작용과 심리적 후유증을 설명하면서 낙태의 대안으로 '입양'과 '미혼모로 아이를 키우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원치 않는 임신을 미리 막지 못했을 경우 선택지가 출산으로 한정되는 것이다.
2016년 성교육 연구학교로 지정된 서울사대부고에서 작성한 성교육 자료집은 '성적 자기 결정권 의식' 체크 리스트를 제시하고 있는데, 80점 이하의 낮은 점수를 받은 경우 '낙태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낙태 행위에 가해자가 있다는 대목에서 '낙태는 범죄'라는 인식이 담겼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교육 현장에서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낙태죄가 헌법에 맞지 않는다는 사법부의 결정에 배치되기 때문에 법 개정 전이라 하더라도 교육 내용을 수정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낙태죄 폐지운동을 벌인 문설희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 공동집행위원장은 연합뉴스 통화에서 "고교 성교육 수업 자료에서 여전히 임신중절수술에 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우려스럽다"며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임신중절수술이 헌법으로 보장된 '자기 결정권'으로 인정받았다는 내용이 조속히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문 집행위원장은 교육 현장에서 임신중절수술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생명 경시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그는 "헌재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임신중지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사회적으로 인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태아의 생명권을 폄훼하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임신중지에 대해 알려주는 것은 오히려 올바르고 신중한 성생활의 첫 단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미향 전국보건교사회 회장은 "학교에서는 생명에 대한 책임감 없이 성관계를 하면 불법 낙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짧게 언급하는 데 그치고 주로 생명 존중을 강조한다"면서도 "그러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났기 때문에 관련 내용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낙태를 죄악시하지 않는 방향으로 성교육 표준안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수업 자료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부 학생건강정책과 관계자는 "성교육 표준안 개정에 대해 내부적으로 논의가 오가고 있지는 않다"면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났다고 해도 학교에서 '낙태를 하라'고 가르칠 순 없는 노릇이다. 피임을 더 잘해야 한다거나 낙태를 선택할 때 신중해야 한다는 내용 등을 추가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성교육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할 수 있도록 예방 교육에 힘쓰는 한편 실제 임신 상황에 부닥쳤을 때 학생이 스스로 판단해 합리적인 결정에 도달할 수 있도록 여러 선택지를 알려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현이 서울 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부장은 "양육·입양·낙태, 세 가지 선택지의 장단점에 대해서 가르치고 이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옥영 경기대 교수는 "임신을 했을 경우 무조건 '낙태하고 공부를 해라'라거나 '생명은 소중하니까 아기를 낳아 기르라'는 식으로 답을 내리려는 교육은 지양해야 한다. 학생이 스스로 '더 좋은 상황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토론하려면 여러 여건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전제 조건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csm@yna.co.kr, kwakhyo1@yna.co.kr, seyeon@yna.co.kr, yellowyer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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