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진 "'기생충' 통해 연기하는 동력 얻었죠"

입력 2019-06-05 13:55  

장혜진 "'기생충' 통해 연기하는 동력 얻었죠"
"봉준호 감독 섬세한 연출, 깜짝 놀랄 때 많았다"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기생충'의 충숙은 행동이 먼저인 인물인데, 저는 말이 먼저 나가거든요. 그래서 물러서 있으려니 참기 힘들었어요. (웃음)"
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영화 '기생충'의 장혜진(44)은 시종일관 쾌활하고 발랄했다. 그가 연기한 충숙과는 달리 호탕한 웃음이 트레이드마크였다.
그는 "시놉시스만 들었을 때와 달리 시나리오를 보니까 분량, 특히 액션 장면이 많아서 놀랐다"고 충숙을 처음 만난 순간을 돌아봤다.
충숙은 전원 백수 가족의 아내이자 엄마로, 전국체전 해머던지기 은메달리스트 출신이다. 매우 박력 있고 남편 기택(송강호)을 꼼짝 못 하게 만든다.
"이미 장성한 아이들에게 가난을 물려주는 충숙의 마음이 어떨까 싶었어요. 그래서 남편을 더 구박하는 거죠. 아이들한테는 미안한 마음이 크고요. 그런데도 아이들은 밝고 남편은 너무 착하죠. 가난을 사회 탓으로 모든 것을 돌리고 계속 우중충하게 있을 순 없잖아요. 그래서 피자 박스도 접고 하는 거죠."


이런 충숙을 연기하기 위해 장혜진은 살을 찌워야 했다.
"살찌울 때는 하루에 여섯끼를 먹고 운동은 40분만 했어요. 다시 살을 뺄 때는 하루 두 시간씩 운동했고요. 화면으로 봤을 때 살짝 보이는 뱃살에 저도 놀랐어요. 그 정도로 찐 줄 몰랐거든요. 감독님은 흡족해하셨어요.(웃음)"
'기생충'은 전날 기준으로 4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장혜진은 "실감이 잘 안 나고 꿈만 같다"고 벅찬 기분을 전했다.
한국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관객들에게까지 자신을 알린 장혜진이지만 그는 과거 연기를 긴 시간 동안 중단했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1기 출신인 그는 연기에 자신감을 잃고 데뷔작인 영화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1998)을 마지막으로 연기를 9년 동안 접었다.
"그 당시에는 대본을 받으면 어떻게 역할에 잘 맞게 할까만 생각하고 기계적으로 연기했어요. 그래서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마트부터 백화점까지 판매원으로 일했죠. 그때 봉준호 감독님이 제게 '살인의 추억'을 함께 하자고 전화를 하셨는데 결국 같이하진 못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때 받았던 감독님 전화 때문에 마음에 변화가 있었나 봐요. 몇달 안 돼서 판매원은 그만뒀거든요."


그런 그를 다시 영화로 불러준 사람은 이창동 감독이었다. 이 감독은 "너 이제 감성이 충만해졌다"고 말하며 장혜진을 '밀양'(2007)에 출연시켰다.
"대학 시절에는 잘 짜인 깔끔한 연기만을 했다면 연기를 그만둔 시간을 통해 생활 연기를 배웠죠. 처음에는 내가 실패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영화나 드라마도 잘 못 봤거든요. 친구들과 연락도 끊고요. 제가 실패자로 보일까 봐서요. 그런데 또 어느 순간 보게 되더라고요. 그때 쉬지 않았으면 지금 같은 연기를 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이창동 감독님도 '너는 다른 여배우들이 가질 수 없는 감정을 가졌어'라고 하셨거든요."
장혜진은 "이런 점에서는 운동을 포기하고 기택과 결혼했을 충숙과 비슷한 것 같다"며 "충숙도 잘 살고 싶었을 거다"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우리들'(2015)을 보고 장혜진을 '기생충'에 캐스팅하기로 마음먹었다.
"제가 '우리들'에서 한순간에 표정이 일그러지는 장면이 있었는데, 봉 감독님이 그때 표정이 너무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원하셨던 얼굴이라고요. 그런데 '살인의 추억' 때 연락하신 인물과 제가 동일인물인 것은 모르고 계시더라고요.(웃음)"
장혜진은 '봉테일'이라고 불리는 봉준호 감독의 연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감독님이 신경 안 쓴 장면이 하나도 없어요. 소고기 같은 것도 고기의 상태, 시간에 따른 굽기의 정도 같은 것도 모두 신경 쓰세요. 깜짝 놀랄 때가 많았죠."
장혜진은 '기생충'을 통해 "연기하는 동력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아직 연기라는 것에 대한 답을 찾진 못했어요. 답을 찾는 순간 교만해질 것 같아요. 또 다른 작품, 또 다른 캐릭터를 만나면 다시 연기에 대해 고민하겠죠."


dy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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