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 갉아먹는 대학규제]① 캠퍼스 없는 스쿨…한국은 불가능

입력 2019-06-08 09:05   수정 2019-06-10 09:31

[경쟁력 갉아먹는 대학규제]① 캠퍼스 없는 스쿨…한국은 불가능
혁신의 돛 올린 세계의 대학…기존 교육 틀 탈피 러시
학문 영역 허물고 학생은 팀 프로젝트 수업

[※ 편집자 주 = 학령인구 감소로 교육 근간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대학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 4년제 사립대학 50%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대학에서 배우는 지식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도래는 이런 위기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생존을 위한 대안으로 혁신, 그리고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경직된 학사구조에서 벗어나 디지털 세대에 맞는 학습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 대학은 규제라는 늪에 헤어나지 못한 채 그나마 남아있는 경쟁력마저 상실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교육을 둘러싼 환경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외국 대학 사례를 살펴봅니다. 그리고 우리 대학이 직면한 위기 상황, 대학교육을 옥죄는 규제 실체, 대학 구성원 등 교육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해법 등을 담은 기획 5편을 8일부터 12일까지 하루 1편씩 송고합니다.]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미네르바 스쿨'은 교육혁신 대학으로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 대학은 강의실, 도서관, 학생식당, 교수연구실, 운동장이 없다. 학생들은 도시 한 가운데 있는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 온라인 강의 토론 중심 수업
모든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학생들은 커피숍이나 식당, 기숙사 등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편한 자세로 수업에 참여한다.
정해진 시간에 컴퓨터를 켜고 온라인 강의 플랫폼을 실행하면 화면에 교수와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 얼굴이 나온다.
수업은 토론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정원은 20명을 넘지 않는다.
교수가 토론 주제를 정하면 학생들은 컴퓨터 화면에 나오는 다른 학생 얼굴을 보면서 자기 생각을 밝히면서 의견을 주고받는다.
평균보다 말을 많이 하면 빨간색으로, 말을 적게 하면 초록색으로 각각 변한다. 평균을 유지한 학생은 노란색 화면으로 표시된다.
교수는 모든 학생이 토론에 참여하도록 지도하고 저장된 수업내용을 다시 보기로 분석해 학생들을 평가한다.
모든 학생이 강의하는 교사를 일방적으로 바라보며 수업내용을 받아적는 한국 교육현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넓은 캠퍼스를 보유한 전통적인 대학과는 완전히 다르게 교육방식으로 운영하는 곳이 미네르바 스쿨의 특징이다.
이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미국(샌프란시스코), 영국(런던), 독일(베를린), 인도(하이데라바드), 대만(타이베이), 한국(서울) 등 세계 7개국 도시에서 3∼6개월 동안 머물며 나라별 다양한 문화를 체험한다.
세계 각국 도시가 캠퍼스인 셈이다.
학생들은 현지 기업과 공공기관·단체 등과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해 과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배운다.


◇ 혁신적인 교육방식 한국에서는 불법
벤처 자본 투자를 받아 2011년 설립된 미네르바 스쿨은 2014년 첫 신입생을 받았고 올해 첫 졸업생을 배출한다.
2016년 전 세계 50개국 1만6천명이 미네르바 스쿨 문을 두드렸으나 합격률은 1.9%에 불과하다.
미국 유수의 명문대학 문보다 더 좁다.
재학생 10명 중 7∼8명은 미국 이외 국가 출신으로, 첫 졸업생이 올해 배출된다.
캠퍼스를 갖춘 미국 일반 대학과 비교하면 반값 수준인 학비와 온라인 교육방식을 채택하면서 전 세계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누구나 지원할 수 있고 미국 대학 입학시험인 SAT나 ACT 점수도 필요 없지만, 창의력과 비판적인 사고력을 판단하는 자체 입학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국내 대학도 미네르바 스쿨 교육방식 도입을 검토했지만, 규제에 막혔다.
장제국 동서대 총장 "미네르바 스쿨은 입학정원이 없다. 좋은 학생이 많으면 많이 뽑는다"며 "우리나라는 입학정원 규제 때문에 정원을 조정하려면 교육부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네르바 스쿨은 기숙사를 상업지역에 두고 학교 부지나 건물은 없으며 수업방식도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정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를 적용하면 모두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 기업·지역사회와 함께하는 프로젝트 수업
세계 각국 대학에서도 기존 교육 틀에 벗어나 다양한 혁신에 나서고 있다.
학과 통폐합으로 10년 동안 69개 학과를 폐지하고 모든 강의를 프로젝트 중심으로 바꾼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ASU)이 교육혁신으로 주목받고 있다.
학생은 기업과 지역사회 문제점을 해결하는 산학협력·지역 밀착형 교육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수업에서는 학생이 주인공이 되어 강의하고 팀별로 프로젝트 수업을 한다. 교수는 코치 역할만 한다.
2002년 설립한 미국 올린공과대학은 공학에 경영학을 접목한 혁신적인 교육방식을 채택, 공학교육에서 혁신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이 대학도 기업과 지역사회에서 요구하는 프로젝트에 대학생을 참여시켜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사 등 글로벌 기업이 요구하는 협력을 통한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교육을 하고 있다.

2013년 프랑스 파리에서 설립된 스타트업 학교 '에꼴 42'(Ecole 42)도 교수·교재·학비가 없는 학교로 유명한 IT 교육기관이면서 혁신 교육으로 성공한 곳으로 평가받는다.
학생은 팀 프로젝트에 참여해 스스로 연구 주제를 정해 인터넷 등에서 필요한 지식을 찾아내고 협업으로 결과물을 도출한다.
한 교육 전문가는 "미국과 유럽 대학들은 교수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학문 간 벽을 허물고 실패에 맞서 도전하고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혁신 교육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며 "한국에서도 다양한 혁신 프로그램이 시도되고 있으나 아직도 교수가 중심이 되는 20세기형 교육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cc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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