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배상 문제, 법적·정치적으로 종결된 사안" 일축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내달 7일 조기총선을 치르는 그리스가 독일 정부에 2차대전 당시 그리스에 입힌 피해를 배상하기 위한 협상에 응할 것을 요구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이끄는 그리스 정부는 4일(현지시간) 독일 정부에 외교 통지문을 보내 2차대전 피해 배상 논의에 착수할 것을 촉구했다고 그리스 외무부가 밝혔다.
외교부는 "그리스 국민에게 윤리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특히 중요한 문제인 그리스의 (배상)요구를 현실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대화에 나설 것을 독일 측에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통지문 전달은 그리스 의회가 지난 4월에 독일에 2차대전으로 인한 피해 배상을 청구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가결한 것의 후속 조치로 풀이된다.
당시 결의안은 "그리스 정부는 2차대전으로 그리스가 입은 피해를 충분히 배상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외교적, 법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했으나, 구체적인 배상금액은 제시하지 않았다.
그리스 의회의 특별위원회는 2016년 낸 보고서에서는 2차대전 당시 나치 점령으로 인한 피해 규모가 2천920억 유로(약 372조원)에 이른다고 산정한 바 있다.
치프라스 총리는 2015년 집권 직후부터 독일에 2차대전 피해 배상 문제를 제기해왔으나, 그동안은 이 사안이 그리스의 구제금융과 연계됐다는 인식을 차단하기 위해 본격적인 배상 요구는 개시하지 않았다.
채무 위기로 2010년부터 작년 8월까지 고통스러운 구제금융 체제를 거친 그리스는 이 기간 최대 채권국인 독일이 혹독한 긴축을 요구하자 이에 대한 반발로 독일 측에 과거의 과오를 제대로 배상하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왔다.
치프라스 총리가 이끄는 집권 급진중도좌파(시리자)는 총선을 1개월가량 앞둔 가운데 큰 격차로 야당 신민주당에 지지율이 뒤지고 있는 상황이라, 독일에 배상금 협상을 압박하는 것은 총선을 겨냥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런 가운데, 독일 외무부 대변인은 5일 독일 주재 그리스 대사로부터 해당 통지문을 공식적으로 전달받았다고 확인하며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독일 정부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며 "배상 문제는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이미 종결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독일 정부는 그리스에 이미 1960년 1억1천500만 마르크를 지불했기 때문에 배상 문제가 일단락됐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한편, 그리스는 나치 점령기인 1941년∼1944년에 상당한 돈을 은행 강제 대출을 통해 강탈당하고, 콤메노와 칼라브리타 등지에서 양민들이 대규모로 학살되는 등 큰 고통을 겪었다.
또, 이 기간 그리스에 거주하던 유대인 7만 명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갔고, 그리스인 수만 명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사망한 바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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